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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플러스 <151>청도 문복산생명의 맥박 느껴지는 계곡길 풍광에 달콤한 쉼표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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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1.10  16:4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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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살피 계곡


사군이충, 사친이효, 교우이신, 임전무퇴, 살생유택. 신라 진평왕 때 승려 원광이 화랑에게 준 5가지 교훈 세속오계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루게 한 기본정신이다. 원광이 신라 현사(賢士) 귀산과 추항에게 세속오계를 내린 곳이 청도군 삼계리 문복산 기슭 가슬갑사이다.

현재 터만 남아 있는 가슬갑사지 옆에는 깨끗하고 시원한 물이 흐르는 개살피계곡이 있다. 이 계곡의 유래가 가슬갑사 옆에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문복산은 시원한 물과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개살피계곡 덕분에 여름의 산이라는 애칭이 붙었다. 물은 차갑고 숲은 울창하다. 어떤 이는 ‘차마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숨은 비경’이라고 했다. 계곡의 훼손과 오염을 막고 싶다는 의미인 듯하다.

여름의 산, 청도 문복산을 찾아간다. 문복산(해발 1014m)은 경북 청도군 운문면과 경주시 산내면에 걸쳐 있는 산. 영남 알프스로 불리는 산 중에서 가장 낮은 산에 속한다. 옛날 문복이라는 노인이 이 산에 들어와 평생 도를 닦고 살았다 하여 문복산이라 부른다.

거기에는 원광이 세속오계를 내린 가슬갑사지와 물 좋은 개살피계곡, 하늘로 통한다는 통천문을 비롯해 산 중 드넓은 마당바위가 있어 산행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 통천문 바위


▲등산로: 청도군 운문면 삼계리 노인회관→소형 전원주택 옆 왼쪽 길→문복산 개살피계곡 갈림길→첫번째 헬리포터→두번째 헬리포터→통천문→마당바위→갈림길→문복산 정상→개살피계곡 시작점→개살피계곡 탕→개살피골 삼거리→삼계리 회귀. 8.7km, 휴식포함 6시간 소요.

▲오전 10시 20분, 삼계리 노인회관 주변에는 사유지로 주차요금을 받는다. 입구 운문로 양쪽에 주차가 가능하다.

5분정도 오르면 산쪽 작은 주택 옆으로 등산로가 나 있다. 갈림길 이정표는 문복산 4km, 개살피골 문복산 4.7km를 가리킨다.

취재팀은 왼쪽 길을 택해 능선을 타고 정상에 오른 뒤 오른쪽으로 돌아 개살피계곡으로 내려오기로 했다. 조금 짧은 오름길에 긴 하산길이다.

처음에는 볼거리 즐길거리가 없다. 키 작고 훌쭉하게 쇠약해진 토종소나무에 활엽관목이 섞여 있을 뿐이다. 머리를 숙이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된비알을 오르기만 하면 된다.

그러기를 1시간, 한 고비 넘어서면 큰 나무들이 등장해 제법 고산의 향취가 난다. 안부에 송진을 뽑기 위해 상처를 낸 큰 소나무가 있는데.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어서 잠시 앉으려는데 말벌 수십 마리가 날아올랐다. 자세히 보니 쏘이면 사람도 죽을 수 있다는 말벌집이었다. 혼비백산 쫓기듯 자리를 떴다.

 
   
▲ 마당바위서 문복산으로 오르는 길


오전 11시 40분, 첫 번째 헬리포터를 만난다. 사용하지 않아 잡초가 점령해 있다. 두 번째 헬리포터도 마찬가지다.

낮 12시 18분, 산행 중 처음으로 나오는 10여평 규모의 암반을 지나 우뚝한 바위지대. 지리산에 있는 것과 이름이 같은 통천문이라는데 한사람이 겨우 빠져 나갈 수 있는 공간에 불과하다. 그 바위 위에 올라서면 문복산과 인근의 수려한 산세가 도드라지게 다가온다.

바위에 자라는 소나무도 이채롭다. 곧이어 배구장 크기의 마당바위를 지나고 다시 갈림길. 정상 800m남은 지점으로 오른쪽은 삼계리 개살피골 방향이고, 정면으로 직진해야 문복산 정상이다.

이때부터 숲은 더욱 짙어진다. 잎이 성성한 관목류가 평평한 안부바닥을 장식했고 다래와 같은 넝쿨식물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나무를 휘감고 올라 있다. 넝쿨과 나무가 하도 빽빽히 들어차 나무 위에서 뛰어내려도 땅으로 곤두박질치지 않고 넝쿨 위에 걸쳐질 것 같은 원시림이다.

취재팀 일원이 휘적휘적 앞서갔는데 숲이 짙어 금세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뒤를 쫓아 마지막 봉우리를 넘어선 뒤 피치를 올려 문복산정상에 도착한다. 시계가 오후 1시를 가리켰으니 2시간 40분이 걸린 셈이다.

동쪽에 경주 산내의 중마을을 두고 능선을 따라 북으로는 옹강산, 남으로는 운문령, 서로는 올라온 삼계리이다.

운문댐이 만수가 되면 조망이 가능하다는데 이날은 볼 수가 없었다.

 
   
 


휴식 후 하산을 재촉하면 오름길에서 만났던 마당바위와 비슷한 넓은 전망바위가 등장한다. 오후 2시 10분.

오후 2시 50분, 하산 길은 경사가 급하고 길다. 온몸에 힘을 줘서 발을 제대로 딛어야만 안전사고를 막을 수 있다. 오히려 스틱이 불편해 주변에 있는 나뭇가지를 잡는 것이 편하다.

드디어 개살피계곡을 만난다. 계곡 상부는 가뭄 탓에 수량이 적어도 물은 얼음처럼 차갑다.

등산로를 벗어나 굳이 계곡으로 하산 길을 잡았다. 계곡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자연의 길. 고라니 너구리 산토끼 다람쥐 등 오로지 산짐승의 휴식처이면서 산새들의 터전, 그리고 물과 바람이 지나는 길이다. 수리의 날개, 너구리의 똥, 물뱀의 허물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옥류의 계곡은 3∼4km에 1시간 30분 동안 이어진다. 군데군데 선녀탕이든 용소든 폭포든 크고 작은 소와 담을 만들어놓고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상부까지 올라와 텐트를 친뒤 숙박하며 더위를 피하고 있었고 가족동반 피서객은 계곡 중·하류에 자리를 폈다.


취재팀도 계곡이 아름다운 곳을 찾아 휴식하는 달콤한 호사를 누렸다.
 
   
▲ 원시 모습을 간직한 개살피계곡 최상부 모습. 메인


오후 3시 30분, 개살피골 삼거리를 지나 오른쪽에서 합류하는 계곡을 만날 수 있는데 이곳을 따라 오르면 옛 신라화랑들이 무술을 연마하며 훈련했다는 장소가 있다.

계곡을 뒤로하고 더 내려서면 ‘가슬갑사유적지’라는 입석이 나온다. 근래에 재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곳이 가슬갑사지가 아니고 마을자체가 가슬갑사지라는 설이 있다.

가슬갑사는 600년(진평왕 22) 원광법사가 창건한 절로 가실사(加悉寺) 가서사 갑사 등으로도 불렸다. 후삼국의 싸움으로 이 절과 일대의 사찰들이 모두 초토화되자 고려 초 중창불사를 일으켰다.

앞서 말한 것처럼 원광이 절에 머물 때 귀산과 추항이 찾아와 일생의 계명으로 삼을 교훈을 청하자 세속오계를 내린 곳이다.

태조가 운문선사라는 사액을 내려 번성기를 맞았으나 이후 기록과 전설도 없고 터만 남아 있다. 사람이 기거했다는 흔적은 대나무군락과 무너진 돌담, 덩그렇게 선 입석이 전부다.

계곡은 하류로 내려올수록 더 넓어진다. 집채만 한 거친 바위들도 물과 바람, 시간에 닳고 깎여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등산로는 돌밭계곡으로 이어졌다가 다시 산으로 붙고 계곡을 몇 차례 가로지른 뒤 삼계리 마을까지 내려온다.

오전 4시 20분, 회귀했을 때 뒤돌아보면 영남알프스 상운산 방향에 낟가리같이 생긴 볼록한 쌍두봉이 시선을 끈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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