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 9일간의 추석 휴가, 그 이후
[경일시론] 9일간의 추석 휴가, 그 이후
  • 경남일보
  • 승인 2016.09.07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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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옥윤 (객원논설위원·수필가)
오래된 흑백영화 ‘로마의 휴일’은 모국의 공주가 이탈리아에서의 공식일정에 싫증이 나 도망쳐 나와 신문기자와 펼치는 일탈을 소재로 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 영화에 감명을 받은 것은 앤 공주의 일탈이었다. 스페인 광장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은 천진하고 분망해 인상적이었지만 앤의 궁중생활이 얼마나 엄격하고 지루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짧은 만남 짧은 사랑은 일탈이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휴가는 즐겁고 새로운 생활의 활력소를 가져다주는 계기가 된다. 국가적으로는 민심을 챙기고 민의 목소리를 들으며 정국을 구상하고 갈 방향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정부는 올 추석에 9일간의 긴 휴가를 권장하고 나섰다. 고용노동부가 앞장서 경제5단체에 주말과 추석연휴 사이에 낀 12, 13일을 연가휴가로 사용해 내리 9일간을 쉴 것을 권장하고 나선 것이다. 예전 같으면 꿈도 못꿀 일이다. 생산에 차질을 빚어 수출에 지장이 있다며 오히려 연휴 중 작업할 근로자를 모집하거나 휴일을 최소화하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그러나 경제5단체는 오히려 긴 연휴가 근로자의 여가보장은 물론 기업생산성 향상, 내수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긍정적 반응을 내놓았다.

긴 휴가를 두고 해외여행이 러시를 이룰 전망이다. 경제가 어렵고 살기가 팍팍하다는 소리가 무색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여행 중 사용하는 신용카드 결제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더 이상 우리도 일벌레만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이제는 즐길 줄도 알고 쓸 줄도 아는 세계인의 반열에 들어선 것이다. 아니면 ‘노세 노세 젊어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라는 노래처럼 놀기를 좋아해 그동안 근로가 미덕이라는 강제에 묶여 기질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인지.

그러나 긴 휴가가 마냥 즐거운 것은 아니다. 준비된 휴가가 아니라면 경제적 부담이 클 것이고 기업은 기업대로 생산차질을 만회하는 별도의 플랜이 필요하다. 우선 정치는 20대 국회가 민심과 이반돼 있는 문제점을 국민들로부터 직접 듣고 정치패러다임을 숙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동안 금기시돼 왔던 권력구조를 비롯한 국가통치의 모든 문제점을 미래지향적인 21세기형 헌법으로 바꾸는 구체적 작업도 이제는 시작해야 한다. 정말 통일이 도둑같이 찾아올 때를 대비해야 한다.

세계의 경제흐름은 우리에게 큰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중공업과 조선·해운 등 그동안 우리경제를 지탱해 왔던 근간산업이 흔들리고 전 세계적으로 고용이 불안정한 경제구조에서의 탈출구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해법을 내놓아야 할 시점이다. 만약 아직도 뾰족한 대책이 없다면 올 추석 연휴동안 그동안 나무를 보기에만 급급했던 시선을 숲 전체를 볼 수 있는 조감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지금도 로마시의 스페인광장에는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모여들어 북적이고 있다. 앤 공주의 일탈을 흉내내면서. 휴가가 일상을 탈출한 여행이자 일탈이라면 휴가 후의 생활은 일상이다. 5000만이 9일간의 긴 휴가를 끝낸 후 돌아온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도리 없이 그 일상도 우리가 주역이고 우리가 책임져야 할 일이다. 그중에서도 정치나 국회 등 선택받은 자들의 책임은 더욱 막중하다. 휴가기간 중 민심이 얼마나 이반돼 있는지를 한 번 더 절감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경제난으로 고통받는지, 일자리 창출을 위한 해법은 무엇인지, 무엇보다 민생경제의 현주소는 어디인지를 공부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9일간의 연휴가 9일간의 ‘열공’이 돼야 하는 것이다.
 
변옥윤 (객원논설위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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