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물에서 배우는 섭리
미물에서 배우는 섭리
  • 경남일보
  • 승인 2016.09.20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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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핀 김 (미국 LA거주 교포)
조세핀 김
 
아주 작은 거미 한 마리가 인기척에 놀라 부리나케 구석으로 몸을 피해 달아났다. 순간적으로 벌레 혹은 해충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나도 모르게 ‘저 거미를 잡아야 한다’는 강박이 발동했다. 그러나 작은 벌레가 살기 위해 빠르게 숨는 모습을 보며 그런 마음을 접었다. 며칠 전 직장 내 화장실에서 목격한 작은 일이다.

이튿날 그 거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달라진 것은 구석진 모퉁이에 작고 여린 거미줄을 쳐서 거처를 만들어 그 안에 평화롭게 자리 잡았다는 것.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라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무엇 때문에 강함을 과시하는 것일까. 그것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처하는 이유가 되는 것인가 하는.

시절이 되면 제자리를 찾아오는 철새, 모천으로 되돌아오는 물고기들, 생존을 위해 구석진 자리에 철옹성 같은 거처를 마련하는 미물 거미까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보여지는 자연의 섭리와 질서에 감탄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그저 힘이라고 생각하는 걸 다 가졌다고 착각하며 모든 걸 좌지우지하려는 걸까.

인간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하는 그것은 결코 세상을 움직이는 위대한 힘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내 것 혹은 인간의 영역이라고 착각해서 자연을 파괴하고 훼손했던 일이 다시 재해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 장구한 시간을 두고 보면 강한 힘들은 언젠가는 소멸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돼 있다.

가끔 살아 있는 거미를 본다. 만약 거미를 잡아 죽이기라도 했다면 지금의 거미집도 거미의 하루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작은 거미가 생존을 위해 몸을 숨기고 또 그곳에 집을 짓는 과정을 보면서 미물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 할지라도 그 강함을 약함에 우쭐대거나 과시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깨달았다. 자연의 섭리는 작은 것이나 거대한 것이나 인간이 거스를 수 없는 영역임을 느끼게 된다.

미물이라도 인간에게 큰 피해를 미치지 않는다면 공존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세상에 무수한 생물과 사물들이 우리와 함께 하나의 풍경화로 그려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만큼 더 조심하고 배려하고 세심하게 살 일이다.
 
조세핀 김 (미국 LA거주 교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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