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4 (237)
투사가 되어 죽기를 각오한 언니는 어머니가 보이는 이런 식의 두둔에다 더 증오심을 발산하며 항거를 했다.
“이 천치 축구야, 낳기만 하모 다가. 니가 앞서서 가로막는 장애물을 치우고 사람답기 살그로 우리한테 길을 열어조야 될꺼아이가. 넘들은 자식들 장래 생각해서 중학교 고등학교 보내는데 우리는 와 아직도 남녀 칠세 부동석이고 공자 왈 맹자 왈 양반타령 뿐이고 말이다”
언니의 항변은 그러나 아버지의 세태에 대한 위기감만을 더욱 자극해 냈을 뿐이었다. 결과는 뻔했다.
아버지가 반대했던 언니의 초등학교 육년 학업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아버지는 마치 잘 묶어 두었던 가축을 놓친 실패가 어머니 때문인듯 맵고 독한 입심으로 어머니를 타박했다.
그렇지만 어머니 역시 자신의 복안은 있었다. 하지만 깊은 속내를 가타부타 설명하지 않았다. 라디오를 듣거나 농촌지도를 나온 여직원을 보아도 공부 많이 하고 좋은 직장에 다니는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눌려 살지도 않았고 사회적으로 동등한 대접을 받고 살았다. 어머니는 그런 사람들의 알지 못하는 부모에게도 열등감을 느꼈다.
‘내 딸보다 얼굴도 못나고 키도 작건만 공부를 많이 시켜서 좋은 일하게 하니까 얼쑤 돋보인다. 저런 사람들 부모는 얼매나 잘났을꼬’
어머니인들 그런 관이 트인 부모가 되고 싶지 않았을까. 많이는 못되더라도 자신의 힘이 닿는데 까지는 포기하지 않고 뒤를 받쳐주고 싶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경제적인 능력은 한계에 부닥쳤고 언니는 진학의 대열에서 낙오해야 되는 실의를 겪었다. 그나마 위안이 있다면 명자언니도 이웃에 사는 정자언니도, 등 너머 사는 언니의 또 다른 친구들도 들일을 도와야 한다거나 동생을 돌봐야한다는 식으로 문턱에도 못 가본 학교생활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언니의 어중간한 공부가 더 언니를 버려놓았다고 트집 잡았다. 최선을 다했던 어머니의 당찬 노력만 다시 피멍이 들었다. 아버지는 마치 이 경우가 승낙하지 않는 자신의 행동이 선견지명에 의한 것이기나 한 듯 어머니를 엎어삶았다.
국민학교 육 년 동안 언니는 정말 장래를 기대해도 좋을 만큼 건강한 한 그루 묘목이었다. 남학생들을 제치고 더러 우등상을 타기도 했고 운동회 때는 릴레이 선수로 뽑혀서 못이긴 듯이 따라간 아버지가 체면을 무시하고 나서서 손을 휘저으며 응원을 하게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내린 결론에 의하면 언니의 학교 교육은 딸자식 손에다 부모 베는 칼을 들려 준 격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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