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제언] 이 시대를 살아가는 40대 아버지들께
김민규 (부산소년원 분류심사관)
[특별제언] 이 시대를 살아가는 40대 아버지들께
김민규 (부산소년원 분류심사관)
  • 경남일보
  • 승인 2016.08.25 09: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민규

필자는 98년 초입 추웠던 그해 국가의 부름을 받아 현직에 몸을 담았다. 하는 일은 분류심사관. 경찰과 검찰을 거쳐 법원소년부 결정으로 임시로 입원한 아이들의 비행원인을 밝히고, 어찌하면 가정과 학교, 사회생활에 안착할 수 있을까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보니 자연스레 거칠고 모난 녀석들의 내면에 자리한 상처를 발견하게 된다.

소년부 송치만 세 번째인 녀석을 만난 건 작년 여름 이맘때다. 녀석은 면담 내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다 분노의 눈빛으로 외쳤다. “아빤 절 몰라요! 집에 돈도 없어요. 관심도 없으면서 기분 나쁘면 때리기만 해요. 사사건건 시비 걸고 일찍 오라 고함질러요”라고. 다음 날 녀석에게 그토록 분노의 대상이던 아버지를 면회장에서 만났다. 거친 손마디에 이마에 굵은 주름이 파여 우락부락했지만, 미동도 없이 아이가 한 말을 침묵 속에 듣기만 했다. 그가 말미에 한숨 쉬며 한마디 했다. “뭔 말을 해야지 마음을 알죠. 형편이 이래서 제대로 못해준 건 참 미안한네요. 싸돌아다니는 걸 내버려둘 수도 없고 참….”

터벅터벅 심사실로 돌아와 우리네 위 세대 아버지들을 떠올려봤다. 무뚝뚝하고 근엄한, 그래서 감히 범접할 수 없었던 두려운 존재. 그 속에서 힘들어하며 몸부림쳤던 자식들이 어느덧 아버지란 이름으로 내 눈앞에 서 있었던 게다. 다음날 포악한 인간으로 매도되는 아비를 변호하려, 아니 핑계라도 대신 대려고 녀석을 만났다. “아빠도 너 마음 알고 싶은데, 네가 말을 안 한대. 쌔(혀)가 빠지도록 일하는데 받은 게 고작 그거래. 그래서 정말 미안하대.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고 그 할아비한테 맞으며 배워 정말 그래야 되는 줄 알았대”라고.

며칠 뒤 그 아버지는 허름한 옷차림으로 면회장을 다시 찾았다. 면회 내내 “밥 먹었냐”는 몇 마디 말 외 부자간 어색한 침묵. 쉰을 바라보는 비슷한 연배라 녀석을 보낸 후 이런저런 세상살이를 주고받던 중 갑자기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버리면 1시간 뒤에나 올 버스를 놓칠세라 계단을 내려가려던 그이 손을 잡고 나지막이 물었다. “20년 지나 녀석 손자 보면 그때 그 마음 여실 겁니까”라고.

역시 문제는 소통이다. 그 아비도 그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40대 아버지들 역시 오랜 연륜을 통해 소통의 의미와 중요성은 미뤄 짐작하고 있지만, 실상 의사전달과 공동참여, 나눠줌을 연습해본 경험이 없는 게다. 그래서 이 시대 아버지들이 자식사랑 하다 저지르는 실수 중 가장 흔한 게 강요와 불통이다. 마음을 들여다보고 아픔에 공감하기보다는 옳고 그름을 재단질하며 가르치려 들다보니 정작 녀석들은 거친 아비의 사랑법을 억압으로 오해, 내재된 분노의 감정을 반항과 일탈로 표출하는 거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40대 아버지들께 제안한다. 집에 가면 음식물 쓰레기 좀 비우자. 지친 아내가 잠이 들었으면 생색내지 말고 그릇이라도 씻자.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자식들 방에 들어가 얼굴이라도 맞대며 안아주자. ‘갑자기 왜 그러냐고, 미쳤냐’고 반응할지라도 ‘배우지 못해 서툰 사랑이었다고, 표현하지 못해 벙어리 사랑을 앓았다’라고 고백하고 가족에게 백기를 들자. 아이의 내면을 들여다보려고, 곁에서 공감하려고 서툰 첫 발걸음을 내딛는 당신, 그릇 씻고 쓰레기를 비우는 게 아내를 위한 게 아닌 가족으로서 응당해야 할 본분임을 자식 앞에 밝히는 당신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 중 진정한 아버지이다.

 

김민규 (부산소년원 분류심사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