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98년 초입 추웠던 그해 국가의 부름을 받아 현직에 몸을 담았다. 하는 일은 분류심사관. 경찰과 검찰을 거쳐 법원소년부 결정으로 임시로 입원한 아이들의 비행원인을 밝히고, 어찌하면 가정과 학교, 사회생활에 안착할 수 있을까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보니 자연스레 거칠고 모난 녀석들의 내면에 자리한 상처를 발견하게 된다.
소년부 송치만 세 번째인 녀석을 만난 건 작년 여름 이맘때다. 녀석은 면담 내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다 분노의 눈빛으로 외쳤다. “아빤 절 몰라요! 집에 돈도 없어요. 관심도 없으면서 기분 나쁘면 때리기만 해요. 사사건건 시비 걸고 일찍 오라 고함질러요”라고. 다음 날 녀석에게 그토록 분노의 대상이던 아버지를 면회장에서 만났다. 거친 손마디에 이마에 굵은 주름이 파여 우락부락했지만, 미동도 없이 아이가 한 말을 침묵 속에 듣기만 했다. 그가 말미에 한숨 쉬며 한마디 했다. “뭔 말을 해야지 마음을 알죠. 형편이 이래서 제대로 못해준 건 참 미안한네요. 싸돌아다니는 걸 내버려둘 수도 없고 참….”
터벅터벅 심사실로 돌아와 우리네 위 세대 아버지들을 떠올려봤다. 무뚝뚝하고 근엄한, 그래서 감히 범접할 수 없었던 두려운 존재. 그 속에서 힘들어하며 몸부림쳤던 자식들이 어느덧 아버지란 이름으로 내 눈앞에 서 있었던 게다. 다음날 포악한 인간으로 매도되는 아비를 변호하려, 아니 핑계라도 대신 대려고 녀석을 만났다. “아빠도 너 마음 알고 싶은데, 네가 말을 안 한대. 쌔(혀)가 빠지도록 일하는데 받은 게 고작 그거래. 그래서 정말 미안하대.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고 그 할아비한테 맞으며 배워 정말 그래야 되는 줄 알았대”라고.
며칠 뒤 그 아버지는 허름한 옷차림으로 면회장을 다시 찾았다. 면회 내내 “밥 먹었냐”는 몇 마디 말 외 부자간 어색한 침묵. 쉰을 바라보는 비슷한 연배라 녀석을 보낸 후 이런저런 세상살이를 주고받던 중 갑자기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버리면 1시간 뒤에나 올 버스를 놓칠세라 계단을 내려가려던 그이 손을 잡고 나지막이 물었다. “20년 지나 녀석 손자 보면 그때 그 마음 여실 겁니까”라고.
역시 문제는 소통이다. 그 아비도 그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40대 아버지들 역시 오랜 연륜을 통해 소통의 의미와 중요성은 미뤄 짐작하고 있지만, 실상 의사전달과 공동참여, 나눠줌을 연습해본 경험이 없는 게다. 그래서 이 시대 아버지들이 자식사랑 하다 저지르는 실수 중 가장 흔한 게 강요와 불통이다. 마음을 들여다보고 아픔에 공감하기보다는 옳고 그름을 재단질하며 가르치려 들다보니 정작 녀석들은 거친 아비의 사랑법을 억압으로 오해, 내재된 분노의 감정을 반항과 일탈로 표출하는 거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40대 아버지들께 제안한다. 집에 가면 음식물 쓰레기 좀 비우자. 지친 아내가 잠이 들었으면 생색내지 말고 그릇이라도 씻자.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자식들 방에 들어가 얼굴이라도 맞대며 안아주자. ‘갑자기 왜 그러냐고, 미쳤냐’고 반응할지라도 ‘배우지 못해 서툰 사랑이었다고, 표현하지 못해 벙어리 사랑을 앓았다’라고 고백하고 가족에게 백기를 들자. 아이의 내면을 들여다보려고, 곁에서 공감하려고 서툰 첫 발걸음을 내딛는 당신, 그릇 씻고 쓰레기를 비우는 게 아내를 위한 게 아닌 가족으로서 응당해야 할 본분임을 자식 앞에 밝히는 당신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 중 진정한 아버지이다.
김민규 (부산소년원 분류심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