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
김성영(시조시인·고금논술학원장)
남강
김성영(시조시인·고금논술학원장)
  • 경남일보
  • 승인 2016.10.04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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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영

7살 때부터 지금까지 내 삶의 공간적 터전은 남강 유역이다. 특히 청소년기를 보낸 상평동 강변에서의 세월은 내 인생의 가장 생생한 장면으로 장식돼 있다. 맑고 푸른 남강 따라 길게 펼쳐진 희고 넓은 백사장 곁으로 동화처럼 우거진 대밭에는 토끼굴도 있고 여우굴도 있었는데, 우리집은 그 대밭가의 외딴집이었다.

전형적인 농촌이었던 우리 동네는 벼농사 외에 무, 배추, 마, 복숭아, 토마토, 딸기, 수박, 참외, 오이, 당근, 고구마, 감자, 대파 같은 밭농사도 다양했고, 우리집 텃밭에도 고추, 가지, 부추, 들깨 등을 가꿨다. 벽오동, 동백, 감나무, 대추나무, 가죽나무가 집을 빙 둘러 에워쌌고 마당 한 켠에는 봉선화, 채송화, 맨드라미, 천리향, 나팔꽃, 국화가 철 따라 꽃밭을 이뤘다. 모두 남강이 유역에 주고 가는 선물이었다.

지금도 내가 사는 하대동에서 둑길을 따라 남강을 거슬러 올라갈 때면 남강교, 김시민대교, 상평교를 지나 언제나 경남일보 앞에서 발길을 멈춘다. 거기가 우리집이 있던 자리라서 강쪽을 내려다보면 그 옛날의 장면이 고스란히 살아난다. 멱 감고, 물고기 잡고, 조개 캐고, 새벼리 낙조를 향해 물수제비 띄우고…. 둔치 끄트머리 물가에 몰락한 왕국의 유민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는 대나무들이 맥수지탄을 자아내지만, 역사는 사라지지 않고 진화하는 것이니 그리워할지언정 서러워하지는 않는다.

지리산에서 흘러온 남명 선생의 정신이 임란 당시 최초의 의병으로 승전을 거둔 홍의 장군의 기강진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남강 역사의 중심에 진주성과 의암이 있고, 바야흐로 혁신도시를 열고 있지 않은가. 더욱이 남강의 역사를 상징하는 전통문화가 각종 축제의 모습으로 꽃피고 있다. 개천예술제를 필두로 유등축제, 드라마페스티벌, 실크박람회, 공예인축제한마당, 진주에 담긴 한식문화, 진주가요제로까지 스펙트럼을 넓히면서 남강의 흐름과 함께 미래를 열어나가고 있다.

유등축제 첫날인 지난 토요일, 타지에서 대학 다니는 둘째아들이 다니러 온 김에 모처럼 둘이서 데이트를 즐겼다. 강변도 거닐고 부교도 건너고, 기념으로 똑같은 폰 걸이도 사고, 부슬비가 오락가락하는 남강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참으로 고맙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 또한 잊지 못할 남강의 선물 아니겠는가.

김성영(시조시인·고금논술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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