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4 (246)
“이것 가지고 가서 사탕 한 봉 사온나”
속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든 어머니가 양지에게로 와서 전했다.
“너그 셍이가 니가 사탕 한 봉도 안 사준다꼬 샀터라”
곁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양지가 없었던 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옴마가 마련해 놓은 온갖 제물이 다 있다만 동상 니가 사주는 과자가 꼭 묵고 싶다카더라. 혼령이 청하는 거는 그냥 그라는 게 아니라, 다 뜻이 있니라”
또 다른 아주머니도 꼭 귀신의 말을 들어주어야만 효험을 볼 수 있다는 감을 강하게 주지시키며 우정 양지의 등을 밀었다.
어머니가 마음 써서 준비한 많은 제물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는 젯상을 일별한 뒤 마당을 벗어나는데 다시 주머니에서 꺼낸 지폐를 제상에다 올려놓고 아버지가 절을 시작했다. 저 속에 든 진심은 과연 몇 푼어치나 될까 싶은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여기저기, 그렇게 수많은 자상을 서로 입히고 살았는데도 아버지나 어머니 그들은 멀쩡했다. 아니, 더 굳건한 혼연일체의 부부로 양지를 놀라게 한다. 저들을 저토록 군더더기 없이 결속시키는 깊고 넓은 필연의 조건은 무엇인가. 그들보다 더 젊고 더 유식한 딸 양지가 모르는 그 무엇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 의미심장한 의문은 비로소 양지의 의식 속에 대단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자신이 얼마나 미성숙한지도 모른 채 경도된 자기애로 감히 어른을 멸시하며 건방진 성인행세를 해왔던 것이다.
15
나는 지금 어디로 무엇을 하러 가는가. 얼마쯤 마을을 벗어나서 걷고 있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니의 이름으로 원한 과자였으니 과자 한 봉을 못살 것은 없었다. 그러나 막상 무슨 과자를 사야할지 난감했다. 언니가 무슨 과자를 좋아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생각 날 것도 없는 게 당연했다. 표 나게 군것질을 해보지도 않았지만 언니는 왕눈깔 사탕 한 개가 생겨도 나누어서 동생들의 입을 즐겁게 해주느라 자기 입에는 널름 넣지를 않았다. 과자가 아니라 차라리 다른 것을 원했다면 쉬울 것이다.
저작권자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