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민족의 역사가 요동치다
1909년, 민족의 역사가 요동치다
  • 박성민
  • 승인 2016.10.03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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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일보 창간 그해, 안중근 의사 의거 등 역사 공존
▲ 안중근 의사
일제의 군국주의 야욕이 이 땅을 뒤덮고 있던 1909년 10월 15일. 진주에서 최초의 지방신문인 경남일보가 탄생했다. 실업인들을 중심으로 1909년 2월 발기모임을 가졌고 8월에 인가를 받아 창간호를 냈다. 1914년 가을까지 유일한 민간 일간지로 발행되어오다 일제에 의해 강제 폐간됐다. 이후 경남일보는 1980년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조치로 인해 다시 한번 강제 폐간 당하지만 1989년, 9년 만에 복간됐고 지난 2009년 마침내 100주년을 맞았다. 경남일보는 2016년 창간 107주년을 맞아 본보가 태어난 1909년 그해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일제, 국권침탈 야욕 드러내다

9월 4일, 일제가 청나라와 ‘간도협약’을 체결했다.

일제는 청나라로부터 남만주철도 부설권(선양-다롄)을 보장받은 대가로 백두산정계비에 대한 청나라측 해석을 그대로 인정, ‘간도협약’을 강행했다. 이로 인해 간도는 우리의 외교권이 불법적으로 상실당한 상태에서 맺어진 협약에 따라 청의 영토로 귀속되고 말았다. 간도협약은 제1조에 “청ㆍ일 양국 정부는 두만강을 한ㆍ청 경계로 상호 성명하고 정계비로부터 석을수(石乙水)를 경계선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때부터 1950년대 말까지 한-중 국경선은 두만강 상류인 석을수로 확정됐다. 정계비에 기록된 ‘토문강’은 두만강이 아니라 송화강의 상류이며 따라서 간도가 우리 땅이라는 우리 측 주장은 철저히 무시됐다. 그러나 최근 문제시되었던 토문강과 두만강이 별개의 강이라는 각종 역사적인 자료들이 발굴되면서 간도의 귀속 문제가 다시 주목 받았다. 또 지난 2009년에는 간도협약 100년을 맞아 민간단체와 국회를 중심으로 간도협약 무효를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도 했다.

7월 12일 일제는 대한제국과 ‘기유각서’ 체결한다. 사법권 및 감옥사무의 처리권을 일본정부에 위탁하는 각서로 대한제국의 법부와 재판소는 폐지됐고 그 사무를 통감부의 사법청에 이관됐다. 결국 기유각서는 이후 일본은 경찰권·사법권을 차례로 강탈하고 국권을 완전히 빼앗간 1910년 ‘경술국치’의 전주곡이었다.

◇세계에 알린 항일투쟁의 깃발

10월 26일 조선 통감부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역에 도착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러시아 재무대신 코코프체프와 열차 안에서 회담을 가진 후 9시 30분께 러시아 군대의 사열을 받기 위해 하차했다. 이 때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3발의 총성이 울렸다. 그 자리에서 이토 히로부미는 쓰러졌고 곧 “코레아 우라”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놀란 일본 헌병들은 총을 쏜 청년을 체포했다. 그러나 저격에 성공한 청년의 얼굴에는 평온한 모습과 체포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없었다. 그야말로 대한독립군 참모중장의 위엄이 묻어났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가 성공한 순간이었다.

앞서 미국에서는 미주 한국인단체가 통합돼 ‘국민회’가 발족됐다. 미국에 살고 있던 교포들의 항일 애국열을 바탕으로 박용만·이승만 등을 주축으로 1908년 7월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개최된 애국동지대표대회에서 미국에 흩어져 있던 애국 단체를 규합하여 통합 단체를 결성할 것을 결의했다. 이후 1908년 10월 30일 하와이 합성협회 대표 7인과 본토의 공립협회 대표 6인이 모여 단체의 통합을 결의하여 1909년 2월 1일 국민회가 창립됐다.

 
▲ 한국최초 만화 삽화


◇한국에 만화의 탄생을 알리다

3월 4일 민적법(民籍法)이 전국적으로 시행 공포된다.

법률 제8호로 공포·실시한 호적법으로 가족신분 관계를 법률상 명확히 함과 동시에 전국의 호구수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종래의 호적제도가 가지고 있는 결함을 보완한 것이다. 현행 호적법의 효시로 일제식 근대 호적이 이식됐다. 시행 초기에는 호적부의 관장을 경찰관서에서 맡는 등 행정 단속법의 성격을 지녔으나 일제 강점 후인 1915년 4월부터 면장에게 넘어갔다.

6월 2일 한국 최초 만화가 탄생한다. 대한민보 1면에 게재된 ‘삽화’는 이도영의 작품으로 목판화 기법으로 제작 인쇄돼 ‘최초의 한국만화’, ‘최초의 신문 시사만화’로 평가된다. 1909년 9월 미국에서 발행된 ‘신한민보’ 에서 ‘해화’라는 이름으로 만화가 실리기도 했다. 이 만화는 대한제국의 종말이 급박해지던 시기에 등장해 친일파에 대한 고발과 규탄, 항일 구국정신의 고취 등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신문이 폐간될 때까지 1년 동안 연재된다. 최초의 ‘시사만화’ 이기도 한 이 작품은 최초의 한국 만화이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만화이기도 하다.

 
▲ 인산 김일훈 선생


◇죽염 창시자 김일훈 선생 탄생

3월 25일(음력), 인산 김일훈 선생이 태어났다.

그는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한의사, 한의학자이자 민간 죽염의 발명자로 1952년 정계 은퇴 후 함양군으로 내려가 약초 연구와 진료 활동, 강연 활동에 전념했다. 타계하기까지 돈을 받지 않고 환자를 치료하여 ‘가난한 민초들의 의왕’으로 존경받았다. 민간 죽염의 제조기술을 개발하여 확신시켰으며 유황과 다슬기의 효능을 연구했다.

 
▲ 미국의 경제학자 피터 드러커


11월 19일에는 현대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가 출생했다. 그는 산업혁명 이후 등장한 기업이라는 조직을 정의했고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조직으로 보았다. 기업은 영리를 추구하는 경제적 조직이지만 또한 사회공동체적 조직으로서도 역할을 해야한다고 주장하였으며, 경영(Management)이라는 분야를 학문으로서 새롭게 확립하는데 기여했다. 경영자는 경제적 재원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관리함으로써 경제적 성과를 산출할 수 있으며 나아가 인간의 생활을 보다 향상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높은 수준의 생산과 소비는 인간 생활의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성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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