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잊으면 안돼요
서외남(사천 축동초등학교 교사)
[교단에서] 잊으면 안돼요
서외남(사천 축동초등학교 교사)
  • 서외남
  • 승인 2016.10.17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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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아이들의 일기를 통해 말 못할 사정과 형편을 알게 될 경우가 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이나 교우관계, 가족이야기 등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일들도 일기에는 진솔하게 쓴다. 친구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생명을 사랑하는 태도, 웃어른을 공경하며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이 담긴 글을 읽을 때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일기를 통해 주고받는 편지는 사제의 마음을 이어주는 사랑의 가교역할을 한다.

지난주 한 여학생 일기에서 ‘학교 오기 싫다’는 구절을 읽고 깜짝 놀랐었다. 이유는 다른 반 남학생이 자기를 못생겼다고 자주 놀린다는 것이었다. 점심시간에 그 남학생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아이는 뚱뚱한데 자신의 신체를 이용해 누군가가 자기를 놀린다면 기분이 어떨지, 친구를 놀린 적이 없는지 생각해 보게 했다. 처음에는 ‘잘 모르겠다, 기억 안 난다’해 손을 잡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 연후에야 솔직하게 이제는 친구를 놀리지 않겠다고 먼저 약속했다. 정직한 태도를 칭찬해주고 스스로 다짐한 굳은 의지에 대한 믿음을 전했다.

필자가 6학년 때 교실 문을 닫으며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인사했는데 선생님께서 “나는 집에 가지 말고 학교에서 살아라 말이니”라고 대답하셨다. 40여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 선생님을 생각하면 그 말씀이 떠오른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한 아이가 자기도 잊을 수 없는 일이 있다고 했다.

지난 4월 현장 체험학습을 갔을 때 친구를 놀리고 게다가 거짓말까지 하여 선생님께 꾸중 들었던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그 아이에게 다가가 왜 혼낼 수밖에 없었는지 이유를 설명하고 꼭 안아주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리고 이젠 지우라고 말했더니 “저는 그때 선생님께 혼났던 기억을 절대로 잊으면 안돼요. 전에는 친구를 괴롭힐 때가 많았어요. 거짓말도 자주 했지만 선생님께 혼난 뒤로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요.”

선생님의 말 한 마디, 표정, 몸짓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새삼 절감한 순간이었다,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충분히 싹 틔울 수 있는 토양을 조성해주고 꿈의 뿌리가 튼실한 나무로 성장할 수 있게 사랑의 영양분, 관심의 햇살, 신뢰의 생명수를 공급해주는 것이 교육공동체의 역할인 듯하다.
 
서외남(사천 축동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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