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5 (255)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5 (255)
  • 경남일보
  • 승인 2016.10.03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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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5 (255)

중문을 넘다가 돌아보니 부엌으로 들어가려는 듯 문설주를 짚고 의지한 어머니가 허리를 굽힌 자세로 돌아보며 말했다. 순간, 더욱 뻐끔해 보이는 어머니의 눈과 마주친 양지는 가슴이 뜨끔했다. 건드리면 파사삭 스러져버릴 마른 가루의 부조처럼 어머니의 얼굴이 누렇게 떠 보이는 게 아닌가. 밤잠을 설치며 치성을 드린 탓이리라. 무게 없이 가벼운 모습은 소원대로 언니의 해원 굿을 했으니 깨끗이 닦인 마음 때문일 수도 있다. 양지는 애써서 자신의 관찰을 미화시키며 강둑으로 이어진 논길로 내려섰다.

인골이 싸인 꾸러미를 옆에 놓은 아버지는 갈 수 없는 먼 나라를 바라보는 듯이 먼산바라기를 하며 물가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산수 간의 어우름에서 치성을 드리면 영험을 보리라는 무당의 호언장담대로 굿이 진행되는 산 밑의 모래톱에서는 언니를 요절시킨 바위절벽이 빤히 바라 보였다. 봄이면 진달래며 산나물을 캐러 다녔고 때로는 삭정이 묶음을 땔감으로 이고 오다가 곤두박질 쳤던 곳이다. 눈을 감고도 어느 지점에 어떤 바위 어떤 나무가 바람을 이겨내며 높은 등성이를 지키고 있는지 훤히 알 수 있었던 곳.

양지는 강둑에 서서 저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아버지에게 직접 밥덩이를 전하러 내려갈까 누구를 시켜서 전할까를 생각하며 잠시 망설였다. 꼿꼿이 선 아버지의 모습은 아직도 새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기대와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는 듯 의뭉스럽게 보였다. 딸인 양지의 눈에 보이는 아버지의 자세는 완만한 산맥처럼 여일하고 당당하다.

‘그게 남자다. 남자가 남자다워야지’

어머니는 늘 그렇게 아버지를 표현했다. 남자다운 남자가 어떤 남자냐고 다른 사람이 물었을 때 처자식을 호구로 아는 것이 남자지, 라고 오래 연구해왔던 학설을 피력하듯이 곁에 있던 언니는 비아냥치는 음성으로 간단히 반박했던 적도 있었다.

“말을 잘 안하시서 그렇제 너그 아부지라꼬 생각이 없으시것나. 니랑 호냄이한테꺼정 다 돌아도 돈은 안 되고, 믿었던 째보아재까지 아부지로 인자는 무시하고 아들한테 살림 넘깃다꼬 땡전 한 푼 안 빌리주더라꼬 올매나 속상해 하싯는지 모린다. 그게 모도 든든한 아들 자슥 없다꼬 업신여기는 기라꼬 올매나 심장 상하싯는지 니도 봤시모 생각이 달라졌을 끼다. 남자들은 그렇다. 자기 뒤를 떠억 받쳐주는 아들이 울이고 재산인기라. 니도 인자는 너가부지 좀 안됐기 생각해 디리라.”

양지는 다시 가슴이 벅차올라 세차게 고개를 가로 저으며 귓전에서 앵앵거리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지웠다.

펴놓은 짚단 위에다 제물을 차려 놓고 촛불과 향을 피운 큰무당이 온 하늘의 거룩한 뜻을 가슴에다 받아 모으는 형태의 치성을 올리고 있었다. 북과 꽹과리를 치는 무당 둘은 옆에서 마주 들여다보며 열심히 경을 외우고 있었지만 열렸다 닫혔다 하는 입 모양만 볼 수 있을 뿐 요란한 풍물 소리에 눌려 내용은 분명하게 잘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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