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5 (261)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5 (261)
  • 경남일보
  • 승인 2016.10.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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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5 (261)

“친구야, 우리는 니 병이 우째서 낫는지 너무 잘 알제.”

“하모, 하모 잘 알고 말고”

“그렇제. 남편이 우떤 심정으로 사는지, 평생 한 집에서 사는 데 그걸 와 모릴끼고.”

“아무리 잘 안다 캐도 마음 묵은대로 되는기 있고 안 되는기 있는 긴데….”

“말을 그렇제. 그렇지만 부부가 뭣이고. 한 집에 같이 오래 살모 부부간이 얼굴도 닮고 성질도 닮는다 카는 긴데.”

동정이 가는대로, 이런 저런 말을 늘어놓는 가운데 그냥 숙연해진 아주머니들은 너도 나도 눈물을 훔쳤다. 이심전심인 심정을 가누느라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 장면을 엿보던 양지는 어서 이 자리가 파하지 않으면 자신이 먼저 어머니를 불러내서 죄인 아닌 죄인처럼 연민의 대상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었다. 양지가 아주머니들께 양해를 구하며 앞으로 나서려는데 하고 싶던 이야기는 거의 했던 터인지 아주머니 중 누군가 먼저 일어설 준비를 했다.

“몸도 안 좋은 사람 좀 눕게 우리는 인제 가세”

“요새는 의술이 발달 했은께 걱정하지 말고 그까짓 병주머이 확 짤라내 뻔지고 깨끗이 나아서 오니라”

“낼 저녁에 굿 귀경 하러 또 올 낀데 그런 소리는 뭐 하러 지끔 하노.”

“낼은 또 내일이고. 쾌남아 니가 고맙다. 아들 자슥이 많으모 뭐할 끼고. 부모가 필요할 때 같이 있는 그게 진짜 자슥이제”

밤이 이슥해지자 한 마디씩 덕담을 한 뒤 후랫쉬 불을 앞세워서 그들은 돌아가고 어머니하고 단둘만 남게 되자 양지는 가슴이 쓰라렸다. 엄마랑 같은 무렵에 시집와서 너네들이 하며 같은 이웃으로 살아왔던 아주머니들이건만 저들은 건강하게, 자식들하고 같이 살면서 누리게 될 남아있는 생을 걱정하는 척 하면서 자랑삼아 얘기하고 있는데 어째서 하필 내 어머니만 그 외롭고 두려운 길을 혼자 먼저 떠나야 하는가.

아린 가슴을 달래느라 마루 끝에 우두커니 서 있는데 뜻밖에도 명자어머니가 찾아왔다.

“너 오매가 좀 보잔 소리는 들었는데, 내가 원체 바빠 갖고 좀 늦었다.”

이상한 변명을 하면서 들어온 명자어머니와 마주앉은 어머니는 늦은 시간이지만 개의치 않고 꽤 오랫동안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명자어머니가 좋아하는 커피를 타오라 시켜놓고 양지가 자리를 뜬 사이에 어머니는 잘못된 집안 내력을 사과하며 남편의 만행을 용서 빌었는지도 몰랐다. 그런 뒤끝인 것을 증명하듯 양지를 상대로 명자어머니의 넉넉하고 품진 화해와 감사의 말도 건너왔다.

“우리가 며칠이나 굶어서 눈구녕이 허얘갖고 식구찌리 씰어져 있는데 너그 오매가 쌀 한 되를 갖고 구세주 맹키로 들어서는디…. 내는 그때 묵었던 흰 쌀죽이 목구녕으로 넘어갈 때 맛을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우리가 겉으로는 앙숙으로 보였지만 너그 오매가 베푼 속정을 생각하모 너그 아부지한테 맺힌 걸 싹다 풀다시피 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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