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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98)<159>시집 속의 인물, 6.25전쟁영웅이 되다(3)
김귀현  |  k2@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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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27  22:4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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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경찰서 사찰유격대(대장 강삼수)는 대원이 7, 8명 수준으로 10명을 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들은 마을에 파르티잔이 침투하면 곧바로 출동하여 마을 들머리에 매복해 있다가 파르티잔이 보급투쟁을 끝내고 마을을 빠져나가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뒤를 밟아 따라간다.

지리산 조개골에서의 전투는 파르티잔들이 이렇게 하여 밤 12시를 넘겨서 지리산으로 들다가, 어느 한적한 개울가에 자리잡고는 안심하고 가져온 쌀을 내고 잡아온 닭을 비틀어 잔치 아닌 모처럼의 잔치를 벌일 때 벌어졌다. 4명의 대원이 뒤따르다가 한창 잔치가 무르익을 때쯤에 산중턱에 올라서 파르티잔들을 향해 집중소사를 했다.냄비뚜껑이 날아가고 밥솥이 뒤집어지고 난 뒤, 유격대원은 점점 거리를 좁혀가며 선두에 선 대원은 수류탄을 들었다. 파르티잔은 응겁결에 당한 일에 사분오열 어찌할 줄을 모르는 사이 있는 손을 들고 귀순, 하고 외친다. 결과는 사살 5명, 생포 3명이었다.

강경위 부대의 전투는 전광석화, 짧은 시간에 끝나버리는 것이었다. 3명이서 17명 파르티잔을 생포하는 전과는 전과도 전과거니와 그 과정의 모험과 스릴은 그 어떤 게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용맹무쌍한 것이리라. 뒷골쪽에서 하산해온 파르티잔들이 화계리 보급투쟁을 감행한 일이 있었다. 이날도 강삼수대장은 2명의 대원을 거느리고 마을 어귀에서 잠복했다. 자정쯤 달빛을 받은 파르티잔들은 패잔병처럼 다리를 절거나 배가 고파 기진한 상태거나 잠이 지리산 기운에 스며들어 앞이 아득하거나 그런 상태였다. 대장은 이를 놓치지 않고 세 사람이 그들 대열 속으로 과감히 끼어 들었다. 눈치를 봐가며 강동무, 이동무, 진동무 등을 함께 부르며 정말 파르티잔이 되는 것 아닌가 싶을 쯤해서 그들의 선두는 아지트를 찾아 안심하기 시작했다.

그들 중 16명은 아지트 속으로 들어갔고, 1명만 남아 보초를 서는 것이었다. 이때 대원 하나가 보초병을 가격하여 쓰러트렸다. 그런 뒤 강삼수대장은 아지트 속으로 내려다보며 “너희들은 독안에 든 쥐다. 딴 생각 하는 순간 이 수류탄이 너희들을 산산히 부셔버릴 것이다. 총은 개머리판부터 밀어올리고, 사람은 발 뒷굼치부터 밀어내어라. 한 치도 어긋나면 수류탄의 핀은 뽑힐 것이다.”

이렇게 하여 강삼수 유격대는 단 3명으로 17명을 포승줄로 묶어 일망타진, 유유히 지리산을 등지고 하산했다. 말이 전술이지, 이런 전술은 교본에도 없는 전술일 것이다. 강경위의 이런 모험은 모험 자체다. 생명을 바로 바꿀 수 있는 모험이기 때문이다. 소름끼치는 전과요 전투다. 그래서 전쟁사 작가 김창원씨는 강삼수 경위를 ‘6.25전쟁 최고의 명파이터’라 한 것이다.

다음날 하늘에는 정찰 비행기에서 삐라를 뿌리는 것이었다. 그때 광경을 기억하여 필자는 시를 썼다. “파르티잔은 귀순하라/ 정찰비행기가 삐라를 뿌렸다/ 한 가마니 분량/ 비행기 옆구리에서 빠져 나오면 / 넘실 넘실 출렁거리다가/ 은빛 비늘로 뿔뿔이 댓둥거리다가/ 산과 들에 한 장 한 장 내려앉았다...../다음날 이 삐라/ 아이들 손을 거쳐 하자없는 딱지로/ 모조리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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