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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플러스 <157>남해 망운산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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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1.10  16:4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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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운산 아래 망운암 가는 길


남해 하면 금산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경남도기념물과 명승으로 지정된 데다 명찰 보리암이 있고 주변에 쌍홍문과 송악, 기암괴석 등 풍광이 수려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보리암에서 보는 남해 일출은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하지만 남해에서 가장 높은 산은 금산(681m)이 아닌 해발 786m 높이의 망운산이다. 높다고 좋은 산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큰 산에는 나름대로 많은 사연이 깃들기 마련이다.

세계2차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8월 8일 새벽, 남해 망운산에 미 공군 폭격기 한대가 추락했다. 이 폭격기는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군수공장을 폭격하고 귀대하던 중 대공포 공격을 받고 추락한 것이다.

 
   
▲ 남해읍 전경


이른 아침 화염이 치솟는 장면을 목격한 남해의 김덕영(2010년 작고)씨는 뭔가에 이끌리듯 망운산으로 달려갔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참혹한 광경이 벌어져 있었다. 폭격기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 났고 미군 시신 11구도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그는 급히 시신을 수습해 가매장 한 뒤 뒷날 동료들과 함께 되돌아와 시신을 재 매장했다. 전쟁이 끝난 후 이 시신은 미국으로 송환됐고 미군은 김씨의 공을 높이 사 미국시민공로수훈훈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11년이 지난 뒤 1956년 11월 폭격기 추락현장 망운산에 미공군 전공기념비를 세웠다. 비문에는 이승만대통령의 친필휘호가 새겨졌다. 이런 사실은 1958년 문교부에서 만든 초등학교 6학년 도덕교과서에 실렸다.

조선중기 문신 약천 남구만도 이 산에 올랐다. 1679년 남인들의 횡포를 상소하다 역풍을 맞아 남해에 유배된 그는 망운산에 올라 절경에 심취한 뒤 제영등망운산이라는 시문을 남겼다. ‘넝쿨을 휘어잡고 바위를 기어올라 산정에 오르니/ 과연 망운이란 이름이 잘 붙여졌음을 알겠구나/ 백성들이 성은을 입어 요민(饒民, 살림이 넉넉한 백성)못지않게 행복한 것을 보니/ 이 천한 몸도 몹시 고향 땅이 그리워지는 구나’

 
   
▲ 죽은 나무에 자란 버섯과 새생명


▲등산로; 남해 화방사 경내→대밭→능선→오동마을·정상 갈림길→망운암·정상 갈림길→임도(샘터)→철쭉군락지→전망대→망운산 정상(반환)→임도→망운암(반환)→너덜겅지대→화방사 회귀. 6㎞에 휴식포함 5시간 소요.

▲오전 10시, 등산로는 남해군 고현면 대곡리 소재 망운산 기슭 화방사 경내를 가로지른다. 이 지역은 산닥나무 자생지로 천연기념물 제 152호로 지정돼 있다. 사찰을 중심으로 왼쪽 언덕과 계곡을 따라 자라고 있는데 주변에 소나무가 드문드문 있고 상수리나무 신갈나무도 함께 자란다. 산닥나무의 껍질과 뿌리의 섬유질은 종이의 원료로 사용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희귀한 나무로 주로 절 주변에서 많이 발견된다. 이는 조선시대에 종이 만드는 일이 대개 절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산닥나무를 일본에서 가져와 강화도 진도 완도 남해도 거제도 창녕 등지에 심었다고 기록돼 있는 사실로 미뤄 이 나무는 도래종 재배식물이 자생상을 이루게 된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최근 산닥나무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망운산 등산로는 신설됐다. 기존 등산로는 계곡을 따라 나 있으나 얼마 전 이 길이 폐쇄되고 화방사 가람을 가로지른 뒤 능선에 올라서는 것으로 바뀌었다. 화방사는 포클레인을 동원한 공사가 한창이다.

대나무 숲을 통과한 뒤 오른쪽 능선에 올라서면 길 찾기는 수월하다. 대숲에 자라던 수백년짜리 서어나무가 죽기 직전 위태롭게 서 있는데 늦게 형성된 대숲이 세력을 뻗치자 원래 자리 잡았던 서어나무가 햇빛을 받기위해 대나무를 따라 크다가 불균형으로 쇠락해 버렸다.

신설된 길은 비교적 선명하다. 바위와 흙길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등산의 묘미를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코스였다. 30분정도 올랐을 때 등산로 신설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등산로를 벗어나 계곡에 들어가지 말라’는 알림판이 많았는데 물이 많지 않은 남해지역의 상수도 원류인 계곡을 보호하기위한 것으로 짐작됐다. 숲 속에는 재선충 피해를 입은 소나무를 훈증 처리하는 모습도 보였다.

 

   
▲ 겨울로 가는 길목에 있는 망운산 풍경


11시 13분, 산등성이에 올라선다. 왼쪽 망운산 아래 첫 동네 오동마을 2㎞, 오른쪽 망운산 1.1㎞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삐딱하게 서 있다. 다시 능선을 따라 10분정도 오르면 이 산의 또 다른 사찰 망운암으로 가는 왼쪽 길과 망운산 정상으로 바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11시 33분, 노구마을에서 올라오는 임도를 만난다. 주변 넓은 공터에는 화장실과 샘터 심지어 주차장까지 있다. 정상까지 700m 남은 지점으로 철쭉군락지가 넓게 분포돼 있다. 봄철 만개한 철쭉을 보기위해 가족단위의 나들이객이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노구마을에서 임도를 타고 오르면 되지만 차량출입이 원만하지 않기 때문에 사전에 정보를 문의하는 것이 좋다. 철쭉군락지를 관통해 올라서면 망망한 남해, 하동화력과 갈사만, 새로 건설 중인 제2남해대교 일부가 보이는 전망대에 닿는다.


낮 12시, 망운산 정상. 바다 위 점점이 떠 있는 작은 섬들과 청정해역의 바다와 여천공단 삼천포, 지리산까지 조망된다.

그런데 실제 망운산 정상은 1.5㎞ 밖에 KBS 송신탑이 서 있는 지점이다. 통신시설 보호와 동절기산불통제기간 등으로 출입에 제약이 따른다. 이곳에는 고려시대에 설치한 봉수대가 남아 있는데 인적이 드물어 원형이 보존된 것은 다행이다. 그러니까 실제 망운산 정상은 과거의 통신수단과 현재의 통신수단 역할을 하는 송신탑이 동시에 서 있는 곳이다.

 

   
▲ 이름모를 붉은 열매
   
▲ 망운암 일주문


전자에 언급한 미 공군 폭격기의 추락지점과 미 공군전몰기념비는 봉수대에서 북동쪽방향 300m 아래 운암골 언덕에 있다. 당시 김덕영 씨가 자석이 이끌리듯 망운산 화염 속으로 뛰어든 이유는 김씨의 형님에 관한 사연이 있다.

그의 형님 덕병씨는 일본군 통역병으로 징용된 뒤 2년 전 그러니까 1943년 미얀마에서 비행기를 타고가다 산속에 추락해 사망했다. 이런 비보를 들은 김씨는 형님의 시신을 찾지는 못했으나 현지에서 ‘누군가에 의해 수습됐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그 고마움에 보답하는 심정으로 미군의 시신을 수습한 것이었다.

망운산과 화방사는 남해의 제9경에 속한다. 오월이면 철쭉이 만개해 바다를 이루는데 남해와 어울려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제1경 우리나라 3대 관음도량에 속하는 ‘금산과 보리암, 제2경은 ‘남해대교와 충렬사, 3경은 상주은모래비치 제4경은 죽방렴, 5경은 ‘관음포 이충무공전몰유허 6경은 ‘가천 다랭이마을 등 12경까지 지정돼 있다.


 

   
▲ 망운암
   
▲ 화방사

오후 1시 30분, 정상에서 반환해 임도서 망운암으로 갈수 있다.일주문과 너덜겅을 지나 등성이에 올라서면 산속에 고즈넉이 자리한 망운암이 등장한다. 간단한 기념촬영과 낭랑하게 울려퍼지는 스님의 법문소리를 뒤로하고 임도 아래로 내려서면 다시 너덜지대다. 약천 남구만이 시문에 쓴 너덜겅일수도 있는 지역이다. 이곳엔 등산로를 중심으로 아래 위 700m에 걸쳐 돌강이 펼쳐져 있다. 2km에 달하는 돌강도 있다. 그의 이름 남구만은 장자의 문구, ‘대붕일비남구만리’(大鵬一飛南九萬里)에서 따왔다. ‘큰 새는 한번 날면 남으로 구만리를 날아간다’ 뜻이다. 그는 1679년 윤휴와 허견을 탄핵하다 남해에 유배돼 망운산과 금산에 오른 뒤 이른바 제영등금산 제영등망운산 2개의 시문을 남겼다. 약천 외에도 고려∼조선시대까지 남해에 온 유배객은 200여명, 이들은 절망 속에서도 ‘화전별곡’ ‘구운몽’ ‘사씨남정기’ ‘남해문견록’ 등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2시 50분, 화방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 말사. 신라 신문왕 때 원효가 연죽사로 창건한 뒤 영장사 화방사로 바뀌었다. 용문사, 보리암과 함께 남해군의 3대 사찰로 불린다. 오후 3시, 화방사 문화재 152호 채진루 앞을 지나 주차장에 닿았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 너덜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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