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엉킨 인생이 당신 탓만은 아니다”
“뒤엉킨 인생이 당신 탓만은 아니다”
  • 연합뉴스
  • 승인 2016.11.2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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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트라우마는 어떻게 유전되는가’
내가 겪고 있는 이 정신적 고통이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었다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가족포치연구소의 마크 월린 소장은 20여년간 환자 수천명을 치료하며 연구한 결과 이 물음에 대한 결론은 ‘그렇다’라고 말한다.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적 사건으로 마음에 남게 된 상처인 트라우마는 세대에 걸쳐 대물림돼 그런 사건을 겪지 않은 자녀도 정신적 외상에 시달리게 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책에는 상식에 비춰 믿기 어려운 이런 사례가 여럿 등장한다.

예컨대 샌디는 폐소공포증 때문에 비행기도, 승강기도 타지 못했다. 승강기 문이 닫히려 할 때나 비행기에 사람이 가득할 때마다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힌다. 이는 그가 열아홉 살 때 처음 발생한 현상이었다.

샌디는 왜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포증에 시달렸을까. 그는 홀로코스트 희생자 집안의 후손이었다. 그의 조부모와 고모가 아우슈비츠에서 질식사했을 때 열아홉 살이던 그의 아버지는 이를 지켜만 봐야 했다.

19세기 말 미국 운디드 니 대학살 지역에서 태어난 젊은이들의 높은 자살률, 세계무역센터 테러 생존자 자녀들이 겪는 우울증, 캄보디아 킬링필드 생존자의 후손이 보이는 폭력성 등 가족의 역사를 타고 내려오는 고통스러운 기억의 사례는 샌디의 경우 외에도 많다.

저자는 이같이 트라우마가 세대에 걸쳐 유전되는 경로에 관한 몇 가지 연구결과를 소개한다.

하나는 세포생물학 분야의 연구결과로 임신 기간 모친의 호르몬과 정보 신호가 태아의 세포 속 특정 수용체 단백질을 활성화해 태아의 몸에 생리학적 변화를 야기한다고 한다.

즉, 모친이 반복적으로 느낀 분노나 두려움 같은 감정이 태아에게 각인돼 ‘사전 프로그램화’된다는 의미다.

또 하나는 후성 유전학의 연구결과다. 신체적 특징을 전해주는 염색체의 DNA가 아니라 아무런 정보가 담겨 있지 않아 ‘정크DNA’라고 불렸던 비부호화(Noncoding)DNA를 통해 트라우마가 유전된다는 내용이다. 개인의 생활스타일과 습관에서 비롯된 ‘화학적 표지’(chemical tags)가 이 DNA에 부착돼 자녀에게 전달된다.

부모가 어릴 적에 전쟁 지역에서 살았다면 그 자녀는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가 들릴 때 뒤로 숨으려는 충동을 물려받을 수 있다. 이 본능은 폭격 위협에 상시 노출된 부모에게는 보호 기능으로 작용하겠지만 아무 위험이 없는 자녀에게는 늘 지나치게 민감한 상태를 유지하게 한다.

저자는 자신이 겪는 고통이 가족 트라우마의 영향임을 깨닫고 이를 언어로 표현하다 보면 그 고통을 극복할 수 있다며 저자가 고안한 ‘핵심 언어 접근법’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정지인 옮김. 심심. 352쪽. 1만7천원.



 
‘트라우마는 어떻게 유전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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