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조사, 금관가야 생활 터전 증명돼
김해 봉황동 유적에서 삼국시대 가야와 신라의 토기가 다량으로 출토돼 학계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이곳은 6가야 중 금관가야의 왕궁터로 추정되는 곳이어서 이를 뒷받침 할 유물이 추가적으로 나올지 주목되고 있다.
22일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김해 봉황동(사적 2호)유적 북동쪽 평탄면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해 굽다리접시, 그릇 받침대, 손잡이가 달린 굽다리바리, 수레바퀴형 토기와 생활용품인 독(甕), 사발, 시루 등 토기 440여 점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또 굽은 옥과 유리구슬 등 장신구, 토우와 가락바퀴, 뼈로 만든 손칼 손잡이, 사슴·돼지·고래·상어 등 포유류와 어류의 뼈도 발견됐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시기의 문화층(특정 시대의 문화 양상을 보여주는 지층)이 확인됐고, 수혈(竪穴, 구덩이)과 주거 흔적도 드러났다. 그러나 왕궁터로 판단할 수 있는 대형 건물 유구(遺構, 건물의 자취)나 적심(積心, 초석 밑 다짐돌)은 이번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국립가야문화재 연구소 관계자는 “전체 조사 면적 5000㎡ 중 약 30% 정도만 발굴이 이뤄진 상황이어서 대형 건물터의 유무를 단정하기는 어렵다”면서 “4세기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큰 유구를 조사하고 있는데, 내년 이 유구의 전체 규모가 드러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1899년 발행된 ‘김해군읍지’ 고적(古蹟)조에는 ‘수로왕궁지는 지금의 (김해)부 내에 있다고 전해지며, 고궁지는 서문 밖 호현리에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내년 3월께 발굴조사를 재개할 예정이다.
박준언기자
특히 이곳은 6가야 중 금관가야의 왕궁터로 추정되는 곳이어서 이를 뒷받침 할 유물이 추가적으로 나올지 주목되고 있다.
22일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김해 봉황동(사적 2호)유적 북동쪽 평탄면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해 굽다리접시, 그릇 받침대, 손잡이가 달린 굽다리바리, 수레바퀴형 토기와 생활용품인 독(甕), 사발, 시루 등 토기 440여 점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또 굽은 옥과 유리구슬 등 장신구, 토우와 가락바퀴, 뼈로 만든 손칼 손잡이, 사슴·돼지·고래·상어 등 포유류와 어류의 뼈도 발견됐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시기의 문화층(특정 시대의 문화 양상을 보여주는 지층)이 확인됐고, 수혈(竪穴, 구덩이)과 주거 흔적도 드러났다. 그러나 왕궁터로 판단할 수 있는 대형 건물 유구(遺構, 건물의 자취)나 적심(積心, 초석 밑 다짐돌)은 이번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국립가야문화재 연구소 관계자는 “전체 조사 면적 5000㎡ 중 약 30% 정도만 발굴이 이뤄진 상황이어서 대형 건물터의 유무를 단정하기는 어렵다”면서 “4세기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큰 유구를 조사하고 있는데, 내년 이 유구의 전체 규모가 드러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1899년 발행된 ‘김해군읍지’ 고적(古蹟)조에는 ‘수로왕궁지는 지금의 (김해)부 내에 있다고 전해지며, 고궁지는 서문 밖 호현리에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내년 3월께 발굴조사를 재개할 예정이다.
박준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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