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 위협하는 안보, 실용적 해법 찾기
사생활 위협하는 안보, 실용적 해법 찾기
  • 연합뉴스
  • 승인 2016.11.27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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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대니얼 솔로브 ‘숨길 수 있는 권리’
 미국의 한 코미디언은 영화 ‘파이트 클럽’의 대사를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곤욕을 치러야 했다.
 그 대사는 ‘옥스퍼드 셔츠를 입은 사이코가 소총을 들고 돌아다닌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얼마 안 지나 무장한 뉴욕 특수기동대가 그의 집을 들이닥쳐 집안을 샅샅이 뒤졌다.
 화가 난 코미디언은 무슨 일이냐고 따졌고, 경찰은 그의 페이스북 친구가 신고해 출동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 신고기록을 공개하지 않았다.

 의문은 여전히 남았다. 그가 이 집으로 이사 온 것은 열흘 전 일이었고 주소 변경 신청을 하지 않아 공식적인 그의 주소는 그 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9·11 테러의 악몽이 채 가시기 전인 2011년 10월에 이른바 ‘애국자법’이 제정된 이후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애국자법은 정부가 법원의 영장 없이도 통신회사나 인터넷 서비스 제공 기업, 은행 등으로부터 이용자 정보를 수집할 수 있게 했다.

 전직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의 2013년 폭로로 미 정부가 그동안 이 법을 ‘무기’로 삼아 얼마나 불법·탈법적인 정보수집을 벌였는지가 만천하에 알려졌다.

 대니얼 솔로브 미국 조지워싱턴대 법학대학원 교수가 저서 ‘숨길 수 있는 권리’에서 문제로 삼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정부가 국가 안보를 이유로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느냐다.

 저자는 우선 안보 대 사생활 논쟁에서 ‘숨길 게 없다면 두려워할 것도 없다’는 안보강화론자들의 주장을 분석하며 그 안에 내재한 오류를 지적한다.

 이 논리는 사생활이란 잘못을 숨기는 것이라는 잘못된 전제를 두고 있는 데다가 사생활은 곧 비밀이라는 식으로 사생활의 개념을 협소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생활이 개인에만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사회적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사생활은 사회의 교양과 예의를 촉진하는 요소로, 사회가 질서를 부여하는 수단으로서 사생활을 보호하고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즉, 사생활을 보호함으로써 사회가 얻는 편익이 있다는 뜻이다.

 저자는 안보 대 사생활이란 대립구도가 양자택일의 논리를 띠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비판한다.

 안보와 사생활이 서로 배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생활을 희생한다고 더 안전해지는 것도 아니고 모든 안보 조치가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도 아니다.

 양자 사이에 균형을 찾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사생활을 보호한다고 해서 어떤 안보 조치를 완전히 금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다. 안보 조치에 적절한 감독과 제한을 둘뿐이다.

따라서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정부가 사람들의 통화 내용을 듣거나 이메일을 읽는 것이 허용돼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설문조사는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정부가 수정헌법 4조에서 요구하는 수색영장이나 적절한 법원명령 없이 사람들의 통화를 듣거나 이메일을 읽는 것이 허용돼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로 수정돼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는 양자택일 논리가 광범위하게 퍼진 것은 사람들이 ‘불편해지는 것’과 ‘안보 조치가 유발하는 침해를 감수하는 것’을 혼동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안보극장’(security theater)이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한다. 안보극장은 실제로는 안전을 향상시키지 못하면서 사람들이 체감하는 안전도만을 높이는 안보 조치를 뜻한다.

 수백만명이 이용하는 지하철의 일부 역에서 경찰이 무차별 불심검문하는 것이 안보극장의 사례다. 이런 검문이 테러를 예방할 수는 없겠지만 대중에게 테러에 대한 공포를 경감해주는 효과는 있다.

 하지만 실제 안전에 보탬이 안 되는 상징적인 조치로 시민의 자유를 불필요하게 희생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안보자원의 낭비라고 할 수 있다.

 안보의 위험은 종종 과장되기도 한다. 저자는 미국 역사상 가장 피해가 컸던 테러 8건으로 희생된 이는 4천명 이하이지만 매년 독감과 폐렴으로 6만명이 숨진다는 통계를 제시한다.

 저자의 결론은 실용주의 접근법이다. 사생활과 안보가 상충해 타협이 필요하다면 사생활 보호를 위해 안보 조치는 어느 정도 제약돼야 하는가, 이런 제약이 안보 조치의 효과성을 얼마나 저해할 것인가, 규제는 그 정도의 비용을 감수할 만큼 가치가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져야 한다고 말한다.

 “건강한 민주정부라면 그저 정부를 믿으라고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건장한 민주사회는 정부가 무조건 자신을 믿으라고 요구하는 사회가 아니라 강한 규칙과 절차가 마련돼 있어서 정부가 어느 선을 벗어나지 않게 만드는 사회다.”

연합뉴스



 
신간 ‘숨길 수 있는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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