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짓는 철학자 ‘윤구병 일기 1996’
농사짓는 철학자 ‘윤구병 일기 1996’
  • 김귀현
  • 승인 2016.12.04 15: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난 내가 꽤 너그러운 사람인 줄 알았어. 그런데 여기서 살다 보니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더라고. 밴댕이 같았어. 자꾸 짜증이 솟구쳤어. 어쩌면 그래서 일기를 쓴 것일 수 있어.”

 충북대 교수였던 윤구병은 1995년 전북 부안 변산에 땅 9200㎡(2800평)를 샀다. 언젠가 시골에 내려가 농사를 짓겠다는 막연한 계획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그는 이를 계기로 낙향했다. 첫해 농사를 망치고는 이듬해인 1996년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신간 ‘윤구병 일기 1996’은 ‘농사짓는 철학자’로 알려진 윤구병이 1996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거의 매일 쓴 일기를 모은 책이다. 그의 일기는 소소한 일상의 기록이지만, 철학자답게 웅숭깊은 생각과 지혜가 곳곳에 들어 있다.

 저자는 변산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일기를 작성했다고 고백한다. 온갖 잡생각이 붕붕 떠다니는 도시에서와는 달리 생각이 말끔하게 정리됐기 때문이다.

 1996년 첫날 일기를 보면 특별한 내용은 없다. 새해를 맞아 새벽에 산에 올라 일출을 보고 집에 돌아와 떡국을 먹은 뒤 주변에 사는 어르신을 만나러 갔으나 뵙지 못했다는 것이 전부다.

 다음날도 마찬가지다. 경운기 운전하는 법을 배우고 바닷가에 나가 세 시간쯤 굴을 딴 다음 땅을 추가로 사들이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다.

 농사일하고, 밥 먹고, 사람 만나는 평범한 삶의 이야기 중간중간에는 그가 쓴 시도 실렸다.

 “사랑이 찾아오면/ 온몸과 마음으로 껴안아요/ 놓치지 말아요/ 이 순간 이 느낌/ 그래요, 바로 그거지요”(12월 31일 일기 중 일부)

 변산에서 20년을 살아오면서 그가 얻은 깨달음은 무엇일까. 자연과 벗하는 삶만큼 좋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자연이 하는 거야. 자연이 보듬어 안아주는 거지. 사람이 자연하고는 상처를 주고받을 일이 없으니까. 자연이 치료를 해주는 거야. 여기서 살다 보면 얼굴도 밝아져. 자연이 가진 치유능력이야.”

 천년의상상. 920쪽. 3만5000원.

연합뉴스



 
철학자 윤구병이 쓴 ‘윤구병 일기 1996’.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