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7 (290)
“바람도 쐴 겸, 이왕 집을 나섰으니 나 좀 도와줬으면 싶은 일이 있는데 동행하지 않을래?”
절에서 나온 산길이 끝나는 곳에 용연사의 표석이 보일 때였다. 말하는 오빠의 표정에서 이 말을 하러 여기까지 일부러 찾아왔음이 읽혀졌다.
어딘데요 라는 물음도 없이 따라나설 마음이 생겼다. 청맹과니처럼 갇혀 있자니 갑갑하여 사람들이 엉켜 사는 세상으로 나가 그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던 참이었다.
“오늘 동생을 시험하고 싶은데 그래도 괜찮을지 몰라?”
“시…허엄요오?”
“전에 내가 살던 절 집에 스님 두 분이 계ㅤㅅㅣㅆ는데 큰 붓으로 큰 글을 쓰시는 스님은 작은 글도 잘 쓰시는데 작은 붓으로 작은 글을 쓰시는 스님은 큰 글을 영 못쓰시더라고”
“뭔가 분위기가 어렵게 느껴지는데 저 그런 자리는 싫어요.”
“아, 그건 그냥 해보는 소리고-”
저쪽에 세워져 있는 오빠의 오토바이를 바라보면서 양지는 아까 산에서 본 여자의 이야기를 했다.
“그렇지, 자기주도적인 삶 속에서라야 생기는 팔팔해지는 법이거든. 동식물 중에도 돌연변이종이 있는데, 항차 사람이야, 더구나 예술을 하는 사람은 더불어서 묻혀 넘어가버리는 생을 절대 용납 못하고 배격하지. 그래서 자신만의 대표작을 내고 그 속에서 생의 의미를 찾고. 문제가 있다면 알고 있어도 실천하기 어려운 환경이 문제지.”
“오빠는 사람이 취해야할 가장 참다운 가치는 뭐라 생각하세요?”
“이건 참 기습적인 질문인데. 동생 물음에 딱 맞는 답이 될지는 모르지만, 평소에 내가 생각하는 건 도덕이나 정의를 바탕으로 해서 마음먹은 일을 생각대로 펼칠 수 있는 힘이 되는 재력과 권력, 명예나 기예, 주로 그 중에 있지 않을까? 아, 사실은 종교인도 아니면서 대중 또는 타인을 위한 거룩한 희생과 봉사를 더 높이 사야하는 데 그건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조금 후순위가 되는 상태고. 가치 있는 삶이니 그런 단어는 평소에 잘 법해보기 어려운 말인데?”
“지리멸렬하던 차에 그 여자로부터 새로운 화두를 받은 것 같이 신선하고 뿌듯해요.”
“그 사람들 때문에 자극 많이 받았나붸? 나도 그 사람들 아까 봤는데 같은 로타리 회원이라 돈 욕심 많은 성품도 잘 알지, 있는 사람이 더하다는 말이 있듯이 간데족족 이권을 챙기고 껄떡대니 봉사단체에 가입한 목적도 빤하다꼬 뒤통수에 눈총도 많이 받아. 그런 걸 별로 개의찮고 씩씩한 사람들이건만.”
“아, 이제야 그 여자가 한 말들이 이해되네요. 굉장한 부잣집과 그 여자를 매개로 정략결혼, 뭐 그런 게 있나 봐요”
“오늘은 여러모로 동생한테 뜻있는 날이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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