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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03)<163>의로운 시인 윤동주와 경남의 인연(4)
김귀현  |  k2@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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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08  22:4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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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는 연희전문 4학년때 쓴 시가 16편이다. 이때가 그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무서운 시간>, <간판 없는 거리>, <또 태초의 아침>, <십자가>, <눈 감고 간다>, <바람이 불어>,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등을 쓰고는 지금까지 쓴 것들 중에서 뽑아 시집 한 권 묶기로 작정했다. 다 정리한 다음 마지막으로 <서시>를 썼다. 이 작품을 쓴 때가 1941년 11월 20일이었다. 이하 이야기는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을 참고로 한 것이다.

윤동주가 19편의 시를 묶은 시집을 77부 한정판으로 출간하려고 생각한 것이다. 한정판 출간은 우리나라 시단의 한 유행이었다. 백석의 ‘사슴’은 2백부 한정판, 서정주의 ‘화사집’은 1백부 한정판이었다. 이 기준은 필자가 어느 서지학자에게서 들은 이야긴데 서울 장안의 사대문 안에 읽을 만한 사람에게 나누려면 이 부수가 맞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는 서울 바깥 지역은 지역도 아닌 셈이었다. 적어도 문화적 수용자는 남대문, 서대문, 동대문 그리고 북한산 안 쪽에 산다는 이 오만!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시대적인 계산법이다.

윤동주처럼 착하고 의로운 사람이 내고자 하는 77부는 그런 계산법이 아니라 여리디 여린 겸손의 표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19편의 시를 묶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을 붙였다. 일일이 원고지에 베껴서 3부를 작성했다. 3부의 필사본이다. 1부는 자기가 갖고 1부는 존경하는 스승 이양하(영문학, 수필가) 교수에게, 1부는 가장 가까운 후배 정병욱에게 주었다. 시집 출간이 좌절된 데 대해 정병욱은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별 헤는 밤’을 다 쓴 다음 동주는 자선시집을 만들어 졸업기념으로 출판하기를 계획했었다. ‘서시’까지 붙여서 친필로 쓴 원고를 손수 제본을 한 다음 그 한 부를 내게다 주면서 시집 제목이 길어진 이유를 ‘서시’를 보이면서 설명해 주었다. 처음에는 ‘병원’이라고 써 넣어 주었다. 그 이유는 지금 세상은 온통 환자투성이기 때문이라 했다.”

그런데 이 시고를 받아본 이양하 교수는 출판을 보류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십자가’, ‘슬픈 족속’, ‘또 다른 고향’과 같은 작품이 일본 관헌의 검열에 통과될 수 없을뿐더러 동주의 신변에 위협이 따를 것이니 때를 기다리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시집 출판을 단념한 윤동주는 1941년 11월 29일자로 ‘간(肝)’을 썼다. 출판의 자유를 빼앗긴 분노가 폭발할 것이지만 그는 스스로를 달랬다.

그 이후 윤동주는 졸업 직후에 용정 집으로 귀향하여 아버지께 출간 문제를 의논했다. 그러나 고향에서도 사정은 여의치 않았다. 동생 윤혜원의 말에 의하면 오빠가 “3백원만 있으면 되는데…” 하며 안타까워하더라는 것이다. 10세 아래 동생 윤일주 교수도 이때의 일을 두고 아버지께서 출판해줄 의향이 있었으나 모든 여건이 허락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윤동주는 서울에서 출간이 안되니 용정에서라도 시집을 출간하려고 계속 노력했으나 결국은 돈 문제로 좌절되었다.

이 일을 두고 오늘의 현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너도 나도 자비출판에 영일이 없는 시집 출간을 바라보면서 궁핍한 시대를 살았던 윤동주가 더 안쓰러워지게 된다. 그러나 윤 시인! 비록 사후에 일어난 현상이지만 그대 시집은 베스트 셀러이고 수십종이 나오고 그래도 멈출 줄 모르고 인쇄기는 돌아가고 있는 중이고, 바다 건너서도 찍혀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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