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퇴계 선생 원운비
안명영 (진주 명신고등학교장)
[교단에서] 퇴계 선생 원운비
안명영 (진주 명신고등학교장)
  • 경남일보
  • 승인 2016.12.1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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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금산교를 지나 금산면사무소에서 직진하면 삼거리가 나온다. 공적비와 마을 이정표, 아름드리 고목 아래 공터를 볼 수 있다. 좌측으로 둑길을 조금 오르니 향나무 그늘 속에 비석이 있다. 차량통행이 빈번해 접근이 어렵고 뒷면은 벽에 밀착돼 사진촬영을 허락하지 않는다. 비석의 머리는 둥글고 쑥색 바탕에 퇴계선생유적비(退溪先生遺蹟碑)로 새겼다. 퇴계 선생의 남겨진 자취는 무엇일까. 국사봉 주차장을 지나 대나무가 숲을 이뤄 저수지를 가린 한적한 길을 걷는다. 건너편 둑길이 몇 미터 앞이건만 한참을 돌아나오자 서편 둑길에 가장 접근되고 수면보다 조금 높은 곳에 2개의 비석이 있다. 여기에 퇴계 선생의 흔적을 새겼는가.

한 비석의 앞면은 퇴계선생원운(退溪先生原韻)으로 새기고 뒷면은 비바람에 획이 마모되고 조악한 표면이라 글자의 윤곽이 흐릿하며 한자로 돼 판독이 어렵다. 한문선생의 도움으로 내력을 알 수 있었다. 원운(原韻)은 뒷면의 ‘청곡사를 지나며’라는 시를 지칭하며 정미사월(丁未四月) 후학이희영근서(後學李禧榮謹書)로 마무리됐다. 저물녘, 금산 가는 길에서 비(雨)를 만났는데 청곡사 앞 샘에서는 차가운 물 솟네 아, 이게 바로 눈밭의 기러기 발자국 자리이러니 존망과 이합이 하나 되어 흐르는구나.

퇴계 선생은 32세(1532)의 겨울에 곤양군수 관포어득강의 초청을 받아 이듬해 봄에 남행을 시작해 4월 浣沙溪(완사 금성)에서 마무리하며 109수의 기행시를 남긴다. 3월 26일에 월아산 남쪽 기슭 법륜사에서 강공(姜公) 등과 함께 지내고 금호지 둑을 거닐며 촉석루에도 올랐다. 26년 전에 숙부가 진주부사로 부임하자 큰형과 둘째형은 따라와 글공부를 했던 청곡사를 찾아 시를 읊는다. 3년 전 셋째형 이해는 양재벽서사건에 연루돼 유배를 가다 죽는 등 퇴계의 마음은 한없이 무거웠을 것이다.

다른 비석에는 1847년경 도계이희영공이 퇴계 선생이 다녀간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금호지의 동쪽에 금호대를 축조하고 비석을 세웠다는 것을 새겼다. 이후 비석들은 서쪽 둑으로 이전했다가 다시 현재 위치로 옮겼다. 아무리 좋은 비석이라도 읽히지 못하면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 삼거리 공터로 퇴계 선생 유적비를 옮기고 옆에 퇴계 선생 원운비의 위치, 내용, 유래 등의 한글 안내문을 설치하면 비석은 생명을 이어갈 것이다.
 
안명영 (진주 명신고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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