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7 (294)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7 (294)
  • 경남일보
  • 승인 2016.11.29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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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7 (294)

미처 분유를 준비하지 못해서 숨넘어갈 듯 울어대던 정남의 딸에게도 저런 걸 물렸던 적이 있었다. 외면당한 남자와 어린애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설마 젖먹이 어린애가 딸려 있을 줄은 몰랐다. 찬찬히 둘러보니 어린이용 기저귀며 앙증맞은 크기의 옷가지들이 밀려있는 이불 사이에 놓여 있었다. 설마 젖먹이 딸린 홀아비와 살림을 차리라고 선을 보이는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이 언뜻 스치자 양지는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제가 도울 게 뭔지…”

일거리를 찾아 부엌으로 나간 오빠가 양지를 불러냈다.

“동생 밥할 줄 아나?”

“참 오빠도”

양지는 어이없는 추측 말라는 뜻으로 눈을 흘기며 슬며시 웃어 주었다.

“그럼 밥을 좀 안치고 여기 있는 우윳병 소독도 좀 해줄래?”

양지는 시키는 대로 쌀을 씻어 전기솥에다 밥을 안치고 끓는 물에 우윳병을 소독하면서 자꾸 오빠의 기색을 살폈다. 헐거워서 외풍이 밀려드는 창틀을 손보고 보온기 사용이 용이하게 전선을 끌어내어 콘센트 장치를 하는, 침착하고 진지하기 이를 데 없는 오빠의 행동에는 집을 세놓은 주인 이상의 정성이 들어있는 게 느껴졌다.

오빠의 그런 분위기에 끌린 양지는 대야에 담겨있는 세탁물을 더운물을 뽑아 스스로 빨았다. 손을 대고 보니 지저분하고 어수선한 부엌싱크대며 찬장정리도 하게 되었다.

“객이 손을 댔다고 기분 나빠하지나 않을까 모르겠어요.”

“기분 나쁘긴 뭘, 좋지.”

“그런데 주인은 어디 갔어요? 이제 보니 객만 둘이서 이러고 있잖아요.”

“애가 감기에 걸려서 병원에 갔을 거야.”

양지는 문득 남자가 키운다는 어린애에 대한 연민을 느꼈다. 말 못하는 어린애가 아픈 것은 정말 보기 안타까워 대신 아파 줄 수라도 있다면 꼭 그러고 싶었다. 정남의 아기가 고열에 시달리며 아무에게도 닿지 않는 응애응애, 소리 한 단어로 고통을 호소할 때 무력감과 안타까움에 생전 처음 눈물을 지었다. 아기는 오직 앓는 소리로 밖에 의사 표시를 못한다. 그런 아이를 돌보고 있는 보호자도 그쯤의 생병을 같이 앓는다.

“남자 혼자서 애기를 키울려면 정말 힘들 건데”

“뭐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라, 자기는 아주 언내를 잘 키울 자신이 있다네.”

“애기엄마는 뭐하는 사람인데요?”

“도망을 갔대. 애초부터 뭐 그러기로 약속 된 것을 이쪽에서 설마 했던 건 사실이지만”

오빠의 말 중에 다소 애매한 부분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 남자의 딱하게 된 사정은 양지의 입을 다물게 했다. 같은 여자로 연대된 어떤 수치심과 노여움 같은 것이 그녀의 얼굴을 붉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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