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성탄절 선물
서외남(사천 축동초등학교 교사)
[교단에서] 성탄절 선물
서외남(사천 축동초등학교 교사)
  • 경남일보
  • 승인 2016.12.19 15: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라은이가 “선생님, 방학 안하면 안 되나요?”라고 묻는다. “왜?” “방학하면 놀 수 있어서 좋지만 공부가 재미있어서 방학 때도 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어요.” 옆에 있던 소영이가 “저는 공부 먹보가 되었어요. 밥을 한 숟갈 두 숟갈 떠먹듯 공부가 제 머릿속에 쏙쏙 들어가니 자꾸 먹고 싶어요.” 그러자 윤하가 “공부는 시간 날 때마다 벌컥벌컥 마시는 물 같아요”라며 거든다. 방학이 다가오니 선생님,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서운하다는 말이 귓전에 맴돈다.

올해 교무행정업무 전담팀을 맡은 까닭에 업무처리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 정작 아이들과 함께해야 한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놀이장면과 대화를 통해 아이들의 언행이나 표정, 교우관계를 세밀히 관찰해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아이들은 교우관계나 가정사정 등 심리적으로 힘든 일이 있어도 표현을 잘 하지 않기에 선생으로서 그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지나칠 때가 많다.

휴식시간 놀이장면을 지속적으로 지켜보면 교우관계가 파악된다. 종이 울리자마자 운동장으로 달려가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혼자서 책만 읽는 아이도 있다. 소소한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주면 친구나 가족이야기를 술술 풀어낸다. 자신이 부모님·선생님·친구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는 확신을 가진 아이들은 매사에 능동적으로 임하고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활동에 임하는 것 같다.

여가시간에 우리 반 아이들과 공유하고 싶은 것이 많다. 하지만 일기에 댓글 달아주기, 과제 첨삭지도, 생활지도 및 상담, 학습부진아 지도, 직원연수, 각종 계획서 입안 등 다양한 업무에 몰입하다 보면 휴식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간다. 수업이 끝나면 모두가 방과후 강좌에 참석하기 때문에 아이들도 여유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추운 날씨에 통학버스를 타기 위해 아침 7시30분에 집을 나선 후, 방과후 수업을 마치고 오후 4시에 하교하는데 학원에도 가야하는 아이들은 피로를 많이 느낀다. 학교생활은 행복하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너무 힘들어 방학이 기다려진다는 아이의 시린 눈빛이 아른거리는 오후, 성탄절 선물로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놀며 우정을 꽃 피우는 여유로운 일상을 주고 싶다.
 
서외남(사천 축동초등학교 교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