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7 (298)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7 (298)
  • 경남일보
  • 승인 2016.11.29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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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7 (298)

욕설 같기도 하고 친근감의 표시 같기도 한 상소리가 걸쭉한 여자의 음성에 실려 나오는 집 앞에 섰다. 남해집. 이마에 파도 무늬를 조악하게 그린 간판을 붙이고 있는 실비집. 아직 술 마실 시간은 이르다. 그리고 젊은 여자 혼자서 문을 밀기도 미적거려진다.

“들어 오이소”

출입구의 유리를 닦아놓고 돌아서던 여자가 양지를 발견하고 술꾼을 끌 듯 먼저 말을 걸었다. 눈길이 마치 먹이를 본 아퀴와 같다. 양지는 선입견을 갖지 않으려고 마음을 평정시켰다. 그러나 눈썹이 유달리 꼿꼿하다. 주름을 감춘 짙은 아이라인과 인조 눈썹, 취객용 최면제처럼 진한 향수가 역하게 날아온다. 게다가 홍자색으로 칠한 진한 루주. 불 밑에서 보면 나이를 절반은 감추고도 남게 분장을 한 얼굴이다. 여간 억셀 것 같지 않은 여자에게 문간에서 용건을 말했다가는 납득할만한 답을 듣기도 전에 축출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양지는 약간 미소를 띠며 안으로 들어가 여자가 권하는 자리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술은 뭘로? 하는 듯이 주방 턱에다 차반을 올려놓고 안주용 노가리를 찢고 있던 또 한 여자가 고개를 주억 내밀고 바라보았다.

누구랑 여기다 약속장소를 정해놓고 먼저 온 것으로 짐작하는 모양, 그녀가 자리에 앉아도 더 이상 말을 걸지도 않고 자기들 일만을 할 뿐이다. 둘러보아야 두 여자 외에 다른 여자가 필요할 것 같지 않은 테이블 예닐곱 개의 조그만 가게다. 또 그들 두 여자 외에 눈에 띄는 다른 사람도 없다. 한쪽 벽을 꽉 채우고 있는 대형 냉장고 때문에 그렇잖아도 좁은 홀 안은 더 좁아 보였다. 복사판 밀레의 만종이 주방 쪽 기둥 옆에 색 바랜 조화 묶음을 등에 끼운 채 걸려있고 그 밑에는 크고 작은 유리컵을 엎어놓은 진열대가 그나마 제법 정갈하게 눈길을 끈다. 금방 장을 봐온 것 같은 올망졸망한 검은 비닐 꾸러미들이 주방 앞에 길을 막고 놓여있지만 천상 이 바닥에서 늙은 티를 숨기지 못하는 주방여자는 능숙하게 피해 다니며 일을 한다.

“언니, 담치 그것 참 맛있네. 국물이 너무 시원해.”

손가락에다 담배를 끼운 속눈썹이 물큰 김이 솟는 냄비를 열고 국물을 떠 마시며 감탄사를 질렀다.

“오실 손님이 계신 모양이죠?”

손님을 그냥 싱겁게 앉혀놓는 것은 주인의 도리가 아니라는 뜻인가. 다 찢은 노가리를 비닐 팩에 넣어서 냉장고 위에다 얹은 앞치마의 여자가 수저통을 테이블마다 가져다 놓으며 양지에게 물었다.

“아, 네 저 사실은 누구 아는 사람을 좀 찾을까하구요. 전에 여기서 일했다고들 하던데”

고종 오빠로부터도 어디 실비집에서 일하던 여자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고 다방아가씨에게서는 상호를, 지금도 거기 다닐 것이라 보장할 수는 없지만, 이라는 단서 속에 전해 듣기는 했지만 모두 ‘전에’ 라는 전제를 달았기 때문에 정확성이 결여된 상태라서 절로 말이 더듬거려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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