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8 (308)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8 (308)
  • 경남일보
  • 승인 2016.11.29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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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8 (308)

“그렇게라도 해서 책임 소재는 분명히 밝혀 야죠”

“그래서 어쩌겠노.”

“그렇다고 저대로 둘 수는 없는 것 오빠가 더 잘 아시잖아요.”

“오늘도 갔다 왔는데 다행히 애기는 많이 좋아졌고 외삼촌도 극히 만족한 상태로 지내고 계셨어. 이제 와서 애를 엄마한테 돌려준대도 그 아이가 갈 데라고는 고아원밖에 없어. 동생도 봤잖아. 모르긴 몰라도 또 희귀병 든 큰애의 약값을 벌기 위해서 그 여자는 또 다른 돈벌이를 원하고 있을 지도 몰라”

“끔찍해. 그런 발상을 한 여자도 문제지만 그런 일을 조장하는 사람들도 이상해요.”

“이렇게도 우리 한번 생각해 보자. 만약 그 여자한테 그런 일이라도 주어지지 않았다 카모 어떤 일이 생겼을 것 같노. 상상도 안 되지? 그게 무서운 기라꼬.”

“저는 지금 아버지 처지만을 얘기하고 싶어요. 언제까지 어린애를 키우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건 그때 가서 또 형편대로 해야지. 내 생각은 그래. 힘은 드시겠지만 외삼촌도 외로움을 덜고 어린애는 또 어린애대로 보호받으면서 자라면 서로 의지가 돼서 좋지 않겠어?”

“그렇지만 이건 말도 안돼요. 키우지도 못할 자식을 낳고 또 떠맡기만 하면 어떻게 해요. 자기 자신에 대한 노후대책도 막막한 사람이”

“산목숨은 우찌 살아도 살아지는 거라. 우리가 생각할 때 삶이란 멀고 거대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까이 바로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모두 그거더라고. 삶이란 참으로 하찮기도 하고 또 참 지엄하기도 하고”

그 여자가 아이를 낳는 것도 할 수 없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양지도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해서 돈을 벌려고 했을 것이다. 아픈 자식을 구하기 위해서 자식을 낳아서 팔았다던 여자의 절규는 아버지와 관계된 일만 아니라면 너무나 사무쳐서 피가 저릴 것 같았다. 양지는 너무 막연했다. 오빠는 우리가 찻집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단조롭고 밍밍한 현상도 삶의 한 연속이라고 한다. 그럴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양지는 속이 탔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는데 자신은 그것도 모르고 엉뚱한 곳에서 시간만 허비하고 있는 것 같은 옛날의 그 조급증이 도졌다.

에미는 죄인이란다.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죄를 사하는 동시에 다시 죄를 짓는 거다. 어쩌면 어머니는 아무도 몰래 그 여자의 집에 가서 사정을 알아보고 아버지의 행위를 눈감아 준 것이 아니었을까. 저 죽이고 나도 죽자 싶어서 손가락에 피멍이 들어도 아픈 줄 모르고 초오(독초)를 찧었다. 치욕스러운 삶을 살 것이 분명한 용남언니를 죽이고 자신도 죽기 위해 살인을 한다는 죄의식도 없이 어머니가 저지를 뻔했던 범죄의 순간. 옛날에 들었던 어머니의 음성이 시공을 훌쩍 뛰어넘어 그녀의 뇌리에서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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