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8 (313)
“도구방아 디딜방아 겉보리 곱찧어서 그 많은 식구들 새벽밥 해 믹이고, 우는 아 업고 낭구해다 나리고 논매고 밭 매고 질쌈하고, 들에 가모 머슴이고 집에 오모 요새 맹키로 비누가 있나 세탁기가 있나 잿물 내서 삼베 무명베 푸서답 해서 층층시하 어른들 의장수발 다 들었고, 에이고 에이고 식모, 식모는 월급이라도 있다. 우리는 그냥 매인 종 아이더나. 그렇지만 우리는 그리 살아야 되는 기라 생각하고 어른 앞에 고개 들고 말대꾸 한 분 해봤나. 그리 산 우린데 요새 젊은 것들은 그게 아이라”
짐짓 근천스러워진 늙은이의 말이 길어지자 마늘밭노파가 어깨를 눌러 앉혔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파마를 한 긴 머리에다 여러 개의 장식 핀을 꽂은 젊은 여자가 발딱 일어섰다.
“이 자리는 나이 많은 아주머니들 시집살이 자랑하는 자리가 아닙니더. 어른들 시집살이한 이바구는 너무 많이 들어서 인제는 귀에 못딱가리가 앉았거만요. 우리도 그때 태어났으면 똑같이 그런 일하고 살았것지예. 어른들은 말끝마다 당신들이 그렇게 산 원인제공을 우리가 한 것처럼 늘 우리한테 공격을 하는데 에나 듣기 싫습니더. 우리도 물려받은 것 없이 시작해서 하느라고 합니더. 옛날보다 일도 더했음 더했지 적게 하지는 않십니더. 우리 그만 본론으로 들어가입시더”
당돌하게 나오는 젊은 여자를 향해 늙은이들의 눈총과 삿대질이 일어났다. 젊은이들 쪽에서도 지지 않고 늙은이들 쪽을 향해 야유 같은 기색을 피워 보냈다. 한동안 어수선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신구세대의 묘한 대리전을 보고 있는 것이다. 세습시킬 시어미살이의 기회를 놓쳐버린 노인들은 이런 기회를 빌려 버릇없는 젊은 며느리들의 기를 꺾어놓자는 심산들이 분명했고 젊은이들은 젊은이들대로 구세대들의 이유 없는 타박과 질투를 곱다시 받아들일 의지가 전혀 없는 것이다.
거품처럼 솟굴려져 버글거리던 실내의 분위기가 얼마간 가라앉고 나자 마늘밭 노친네가 다시 앞으로 나섰다. 한층 침착하게 정돈된 음성에는 강한 자제력이 실려 있었다.
“주영 에미를 이 동네 살리고 안 살리고 그 한 가지 문제가 아니다. 젊은이들 말도 노상 일리가 없는 거 아인 거 우리도 알제. 그렇지만 사람은 지 혼자 사는 기 아니고 이 동네는 또 늙은 우리만 살고 마는 기 아니라 자자손손 전래해줄 터전인기라. 우리는 그걸 생각하미 이런 자리를 맹글었제 누구 하나를 쥑이자꼬 만든 자리가 아인 거 생각하고 의견을 같이 모아주모 좋것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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