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8 (315)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8 (315)
  • 경남일보
  • 승인 2016.11.29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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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8 (315)

“안에 잠들었는가 아나.”

“열쇠도 없는데 안으로는 몬들어가제.”

“그라모 어데로 갔시꼬? 모리제, 동네 사람들 나오는 거 본깨 낯 들고 몬 살것다 싶은께 미리 줏자를 놨는지.”

“차라리 그라모 됐다. 모두 돌아들 가자.”

무기로 쓰려던 것을 던지듯 모난 말 한마디씩을 내뱉으며 멀어지는 마을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양지는 허물어진 옆집의 뒷담에 기대서 있었다. 호남은 이제 사랑하는 가족들과 오래 살기를 원하며 터 잡았던 마을에서 쫓겨나는 것이다. 마을의 분위기가 그렇게 흐르고 있다는 소리는 진즉 들었지만 그래도 설마 했던 양지는 제 눈으로 확인한 젊은이들의 변심에 아연해지는 충격을 가눌 길이 없었다.

딸자식 중신애비는 에미라 캤는데…. 호남의 불행한 소식을 말하며 어머니는 한숨을 쉬었다. 뉘라서 자기 자식 못되게 할 어미가 있을까만, 어머니의 기도는 누구보다 간절했다. 당신이 한 고생을 딸들은 하지 않고 어디 가서든 하는 일마다 생색 얻고 사랑 받으며 살기를 원했는데 자식들 중 가장 무난하게 살던 호남의 몰락은 어머니 자신의 몰락이나 마찬가지 의미가 되어 어머니를 자진의 막다른 곳까지 몰아 붙였는지도 몰랐다.

양지는 그때까지만 해도 어머니와 자신은 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인간이라고 생각해 왔다. 끊임없이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며 자신을 개척해 오는 자신들과 어머니의 미래를 연결시켜 본적도 없었다.

어느 결엔가 남자 아니면 제 삼자의 시선으로 융통성 없는 어머니를 재고는 했다. 어머니가 만들어 준 밥을 먹고 어머니가 만들어 놓은 환경에서 성장하면서도 약삭빠른 지혜와 간교함과는 거리가 먼 어머니를 아무런 자기 의지나 개척정신도 없이 그저 그렇게 주어진 여자의 껍질을 쓰고 여자의 동작을 취하고 사는 무능한 존재로밖에 생각해 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려 깊은 혜안은 호남이 당할 오늘 같은 날을 미리 점치고 있었던 것이다. 환경이 그러니 그렇게 살수밖에 없었을 뿐인 삶, 그러나 힘닿는 대로 최선을 다해 살았으니 후회는 없다고 자신 있게 말했던 어머니도 물론 꿈은 있었고 동경의 대상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슴만 아플 뿐인 현실을 간파하고 꿈을 접는 쪽으로 마음을 돌렸을 것이다.

어머니에게는 역시 인생 선배다운 현명함이 있었다. 어디 건 삶의 분모는 공통이고 짚으로 새끼를 꼴 때 이어지는 지푸라기처럼 진보와 퇴보는 항상 엇비슷하게 키를 맞추게 되어있음을 꿰뚫었던 것이다. 특별한 삶은 없다는 현태의 표현은 곧 어머니의 말일 수도 있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장래까지 예상하고 실수나 오차를 줄이려 했고 생의 손비를 담담하게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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