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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플러스 <163> 공주 태화산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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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2.10  03: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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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곡사


1455년 단종을 폐한 절대권력 세조는 어느 한 시절 마곡사를 찾았다. 순리를 거스른 죄책감이 있었을까. 세조가 마곡사에 온 이유는 일편단심 단종 편에 섰던 매월당 김시습을 만나러 온 것이었다.

충직하고 강건한 인물이었던 매월당은 1453년 수양(세조)이 왕위를 뺏기 위해 계유정난을 일으키자 책을 모두 불태우고 태화산에 입산한 뒤 승려가 돼 마곡사에 있었다. 매월당을 자기편으로 돌려세워 조정의 정통성을 확보하려했는지, 아니면 진정 그의 능력을 높이 사 좋은 나라를 만들려고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세조는 매월당을 짝사랑한 셈이었다. 하지만 그는 세조가 자신을 만나기 위해 마곡사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인근 무량사로 피해버렸다. 허탕을 친 세조는 태화산 기슭 마곡사 언덕 군왕대에 올라 자신의 부덕을 탓했다. 그리고 마곡사에 영산전(靈山殿)이라는 편액을 내린 뒤 타고온 가마를 두고 소를 타고 돌아갔다고 한다. 실제 그러했는지는 몰라도 마곡사에 가마가 보관돼 있다.

훗날 생육신으로 이름을 올린 매월당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 있다. 그는 탕유관서록(宕遊關西錄)에 세조의 왕위찬탈과 관련해 이렇게 썼다. ‘홀연히 감개한 일(왕위 찬탈)을 당해 남아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도를 행할 수 있는데도 몸을 깨끗이 보전하여 삼강오륜을 어지럽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도를 행할 수 없는 경우에는 홀로 그 몸이라도 지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마곡사 뒤에 있는 부속암자 백련암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한평생 몸을 바쳤던 또 다른 거장 김구선생이 한때 머물렀던 곳이다. 이런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명찰 마곡사에 태화산이 있다.

   
▲ 광복 후 다시 마곡사를 찾은 김구선생이 대광보전앞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 백범이 살았던 심검당



▲등산로;마곡사→백련암→간이 휴게소→활인봉→나발봉→삭발바위·군왕대 갈림길→군왕대→솔숲→마곡사 원점회귀.

▲오전 10시, 마곡사는 하산 후 둘러보기로 하고 안내판을 따라 백련암으로 향한다. 불모비림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부도군을 지난다. 불모는 사찰의 단청·불화·불상을 제작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일찍이 마곡사는 불모승 양성기관으로서 금호, 정연, 보응, 일섭 등 유명한 스님을 배출했다. 마곡사가 이들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비림을 조성한 것이다.

백련암 이정석을 따라 산으로 가면 아담한 암자 백련암이 나타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자 독립운동 지도자인 백범 김구(1876∼1949)선생이 젊은 시절 머물렀던 곳이다.

그는 20대 초반 1896년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하자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에서 일본군 특무장교를 처단한 후 1898년 마곡사에서 계를 받고 수행했다. 훗날 중국 상해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매진했고 국가 임시정부 주석에 올라 해방 후 귀국하게 된다. 70세의 나이에 다시 마곡사를 찾은 그는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향나무를 심는다. 현재 향나무가 마곡사 뜰에 자라고 있다.

목숨을 다해 일으켜 세운 선인의 발길과 마주하며 느끼는 감정이 묘하다. 작금, 돈과 권력, 명예에 매몰돼 나라를 어지럽혀서 혼돈으로 몰아가고 있는 위정자(爲政者), 아니 그야말로 꾼들의 행태에 분통이 터진다.

공주시가 백련암을 기점으로 태화산 일대에 백범 명상 길을 조성했다. 취재팀의 산행코스는 백범 명상 길 2코스이다.

백련암 뒤 계단을 따라 200m정도 오르면 왼쪽 언덕에 마애불이 나온다. 켜켜이 덧 자란 이끼가 세월의 흔적을 보여준다. 마애불은 정교한 느낌이나 품격과는 거리가 있는 다소 소박한 이미지다. 경배하면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말이 전하는 영험한 곳이라고.

오전 10시 48분, 제주도 오름 같은 봉우리에 올라서면 개점휴업 중인 휴게소가 나온다. 등산객이 많은 주말에 음료 등 간단한 음식을 파는 곳인데 평일이라 을씨년스럽다. 활인봉(423m) 정상의 팔각정자를 넘어서면 길은 더 이상 가파르지 않고 완만한 오르내림이 연속돼 나발봉까지 간다.

낮 12시 나발봉, 점심과 휴식 후 산행을 계속해 오후 1시 20분께 한국문화연수원 갈림길에 선다. 산 아래 숲속 햇빛에 반짝이는 건물들은 대한불교조계종이 2008년에 설립한 한국문화연수원이다. 약 3만3057㎡(1만평), 연건평 9917㎡(3000평) 규모의 시설에 전통문화체험·명상수행체험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토굴암 앞을 지난다. 쉼터 앞 안내판에 김구 선생이 즐겨 쓴 글귀가 새겨져 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난잡하게 가지 말게나. 오늘 내가 간 발자취는 후인들의 길잡이가 된다네’. 그는 이 산길을 거닐며 수행했다. 난잡하다못해 시정잡배를 떠올리게하는 대한민국 정치 모리배들에 대한 일갈로 들린다.

군왕대와 삭발바위 갈림길을 지나면 태화산 최대 솔숲지대가 나온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수령이 수 백년에 달하는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고 그 사이에 호젓한 길이 나 있다. 마곡사를 찾는 사람들이 태화산엔 오르지 못해도 이 일대 솔숲 길을 걸으며 자연의 정결함에 젖어든다고.

 

   
▲ 태화산 최대솔숲.



세조가 올랐다는 군왕대는 10여평에 불과한 뜰. 그러나 전국 십승지에 속할 만큼 지기가 뛰어난 곳이라고 한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이 이곳에다 몰래 시신을 매장하는 일이 빈번해지자 조정에선 나라가 어지러워 질 것을 우려해 암매장한 유골을 모두 파낸 후 더 이상 매장하지 못하도록 돌로 채워버렸다.

세조가 이곳에 올라 내가 비록 왕이지만 ‘만세불망지지’인 이곳과는 비교할수가 없다고 허망해 했다한다. 그래서 군왕대라는 이름을 얻었다.

오후 2시 10분, 마곡사는 태극형상의 물길 3개가 모이는 곳에 세워진 절이다. 640년(백제 무왕 41), 신라의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1199년, 불일 보조국사가 재건했다는 기록이 있다.

절 앞마당에 우뚝한 5층석탑이 가장 눈에 띈다. 고려 말 원나라 라마교의 영향을 받아 세우진 탑으로 두개의 양식이 하나로 어울려 있다. 다보탑이라고도 불린다. 2층 기단 위에 5층의 몸돌을 올린 후 머리장식을 올렸다. 2층 몸돌에는 사방을 지키는 사방불을 새겼다. 머리 장식으로 라마탑에 보이는 풍마동장식을 두었는데 이는 전 세계적으로 희귀한 사례이다. 대광보전 화재 때 훼손돼 원래 탑재가 아닌 화강암으로 보수한 곳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마곡사의 가람구성도 독특하다. 샛강을 사이에 두고 남원과 북원으로 나눠져 있다. 남원은 영산전을 중심으로 배치돼 있고, 북원은 대광보전(大光寶殿)을 중심으로 따로 배치돼 있다. 북쪽의 가람이 본절이고 입구 쪽의 영산전이 있는 곳은 별도의 암자와 같은 모습이다. 교량을 건너 빠져나올 때 뒤돌아본 마곡사, 김구선생이 심었다는 향나무에 유난히 눈길이 갔다. 은은한 향기까지 나는듯 했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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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산 최대솔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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