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334)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334)
  • 경남일보
  • 승인 2017.01.17 22: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334)

“그래 알았어. 나 여기 있는 동안까지 만이라도 호칭 없어도 되니까 그 여사님, 여사님 소리 좀 안했으면 좋겠어.”

양지는 잠시 망설였다. 이렇게 타인과의 관계가 흔쾌해져도 될까, 습관적인 경계심이 자꾸 잔털을 일으켜 세웠다. 병훈이 결혼을 하면 도맡아서 할 일도 많을 텐데 왜 집을 나왔는지, 집에 전화를 했었다는 말에도 다른 해명이 없는 것도 수상쩍다. 올곧잖게 들리던 전화 속 여자의 반응도 다시 부풀려졌다. 병훈에게 양지를 추천했던 자신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마음이 상했을 거라는 데까지는 추측이 가능했다. 그러나 양지는 자신의 진로를 걸만큼 추여사가 양지 자신을 심중에 깊이 두고 있을 것으로는 여기지 않는다. 마음 같아서는 추여사가 왜 강 사장과의 인연을 그렇게 정리하고 나왔는지에 대한 이유부터 묻고 싶었다. 이전에도 남다른 관심을 추 여사로부터 받고 있기는 했지만 막상 이렇게 먼 길을 찾아오도록 까지 자신을 마음에다 품고 있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아주 걸렸다.

마치 양지가 머문 궁금증의 어우름을 꿰뚫듯이 추여사가 먼저 물었다.

“사장이랑 통화해봤어?”

양지는 생겨난 경계심 때문에 바로 말하지 않았다.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어요. 길래 회사 일에 지장을 줄 수도 없고, 그래서 사표도 냈어요. 그 뒤로는 그쪽으로 전화할 일도 없었고……. 그런데 집은 왜 나오셨어요?”

“그 이야기는 이따 차차 하기로 하고, 어서 거처로 가지 날 언제까지 길가는 손님 모냥으로 이렇게 세워 둘 거야?”

“제가 지금 있는 곳이 여사님을 모시고 갈만한 데가 못돼서요.”

“아이고, 참말로 섭섭하네. 동네사람들한테 죄 들었다고 했건만. 난 벌써 양지를 내 딸 삼아서 둘이 오순도순 의지하고 살라고 하느님이 길을 열어주신 거라 생각해.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서 내가 잘해줄게.”

양지는 마지못해 앞장을 섰고 추 여사도 캐놓은 나물을 챙겨들고 뒤를 따랐다. 자신이 겪은 말 못할 집안 사정을 동네 사람들로부터 들은 것 같으니 숨기려 애 쓸 필요도 없었다.

“방을 얻어야겠다. 이런데서 오래 있다가는 사람 버린다.”

양지가 거처하는 방안을 들여다 본 추여사는 마치 보고 싶은 딸의 자취방을 보고 실망한 어미처럼 오만상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외출복을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명색뿐인 부엌으로 내려가 저녁밥을 지었다. 아까 캔 나물을 데쳐서 무치고 이웃에서 가져다 놓은 된장을 풀어 시래깃국도 끓였다.

“인생살이라는 게 본래 제 맘대로 안 되게 되어있다. 그래도 산목숨은 어떻게든 다시 살게 되어있고.”

얼었다 녹은 질퍽한 길을 따라 이웃 샘에서 물을 길어오기도 하면서 추여사는 어미처럼 자상하게 굴었다.

“어서 밥 먹고 양지랑 의논할게 있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