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335)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335)
  • 경남일보
  • 승인 2017.01.17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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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335)

어질러져 있는 아궁이 앞을 몽당비로 싹싹 쓸어치우며 추여사가 가볍게 말했다. 손수 상을 차리고 밥솥을 열었다.

“그릇이 마땅찮아요.”

고무대야에 담겨있는 양재기를 들어내며 양지가 난색을 짓자 얼른 그릇을 받아 제 자리에다 놓은 추여사는,

“그릇은 무슨, 솥에 놓고 그냥 먹지 뭐. 양지는 한 솥밥 먹는 사이란 말 몰라? 서로 제 몫 챙기느라 금을 그어놓고 먹어도 그 속에 인정은 있었는데 요즘은 없는 것 없이 흔전해도 인정은 되레 메말라서 더럽게 됐어.”

하며 행주로 싼 밥솥을 방안으로 들고 갔다. 구들이 꺼진 방안에다 삼발이 알루미늄 상을 놓자 기우뚱 했다. 옆에 있던 종이를 접어 상의 평형을 잡으며 추 여사가 중얼거렸다.

“최실장이 이런데서 살다니, 얼마를 있더라도 좀 모양이나 갖춰놓고 지내야지.”

누가 주인인지 누가 객인지 애매한 모습으로 저녁식사가 끝났다. 추 여사는 준비해 온 사과와 귤을 후식으로 꺼내 깎았다. 양지는 별로 할 말도 없는데 어떻게 긴 밤을 보내나 곤혹스럽던 참에 시간 죽일 일이 또 한 가지 더 있으니 어색함을 더는데 다행이라 싶은 심정으로 과일을 집어 들었다.

“어떻게 이 먼데까지 오실 생각을 하셨어요? 혹시 두 분이 또 아이들처럼 다투신 거예요?”

양지는 일부러 웃음을 섞으며 농담처럼 말문을 열었다. 모른 척 아무 말 없이 며칠 쉬었다 가게나 할까 했으나 내내 모르는 척 하는 것도 일부러 찾아온 사람에 대한 인사가 아닌 것 같았던 것이다.

강 사장과 추 여사는 동성연애를 하는 사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두 사람의 친분은 유달랐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아끼는 것이 자식을 낳고 사는 남편과 아내처럼 은근하게 표출되는가 하면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삐져서 각자의 방에 머리를 싸매고 누워 나 없어도 사나 보자고 버티던 칼로 물 베는 싸움도 여느 내외간들처럼 잦았다. 여성적인 애정과 집착을 보이는 쪽은 주로 안살림을 맡은 추 여사 쪽이었다.

“듣고 싶어?”

“아뇨, 얘기하시기 곤란하면 안하셔도 돼요.”

“인간이 변해도 너무 변했어. 딱 꼴 보기 싫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그보다 나 최 실장하고 살고 싶어.”

추 여사는 갑자기 양지에게로 말꼬리를 돌리며 기색을 살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예사롭지 않구나. 하지만 양지는 시종 경계의 미소를 지었다.

“쉬었다 가시는 거야 좋지만 불편해서 안돼요.”

“그러게 시내다 방을 얻어야지. 어차피 여기도 비워줘야 한다면서?”

“전 무슨 말씀인지 뜻을 모르겠어요.”

“병훈이 놈 결혼하고- . 최실장이나 나나 비슷한 감정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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