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상생(相生)
김정희(시조시인· 한국시조문학관 관장)
아름다운 상생(相生)
김정희(시조시인· 한국시조문학관 관장)
  • 경남일보
  • 승인 2017.02.15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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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몇 해 전, TV에서 본 수목장(樹木葬) 영상은 참으로 감명 깊었다. 고려대학 농대 김장수 교수의 수목장 화면은 우리도 선진 대열에 동참할 수 있는 선도적인 입지를 마련했다. 고인이 생전에 사랑했던 굴참나무 아래 자신의 분골을 묻어 달라는 유언에 따라 나무와 상생하는 장례예식은 돌아가신 이와 살아 있는 이의 숭고한 정신의 승화였다. 살아 있음이란 하루하루의 일상이 무덤으로 향하는 과정이기에 지금 숨 쉬는 이 순간, 우리는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일을 모르고 살아가면서 생을 마감하는 장례도 삶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영혼이 불생불멸하며 윤회 속에 삶을 거듭한다면 후생에는 나무로 살고 싶다. 공동묘지나 개인분묘, 공원묘원이나 납골당 등이 우리의 좁은 국토를 잠식하고 있음을 보았을 때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프랑스나 영국, 스웨덴 등 이미 많은 선진국가에서는 산골(散骨) 공원으로 장미정원, 소나무숲 공원 등을 조성해 고인의 나무 아래 이름을 걸어두고 가신 이를 추모하고 있는데 국토와 환경을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넓은 국토를 가진 중국의 지도자 등소평도 자신의 무덤을 남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겨 분골을 바다에 뿌리지 않았던가.

목숨이 있는 날 우리는 자연의 혜택 없이 살 수가 없기에 돌아갈 때에는 은혜를 갚고 피해를 기치는 일이 없이 베풀고 가야하리라. 요즘 나는 수목장의 매력에 이끌리고 있다. 내 인생의 대부분을 식물원의 원정(園丁)으로 살아 왔으며 나무의 은총으로 살아 왔기에 지금 나무의 특성을 떠올리며 나무와의 상생을 꿈꾸고 있다. 나는 무슨 나무로 환생할까. 설한풍에 꽃 피우는 매화나무로 살까, 온몸으로 꽃구름을 풀어내는 수양 벚꽃나무로 살까, 심산유곡의 낙락장송으로 살까.

봄이면 강산을 꽃으로 수놓고 꽃불 밝히며 바람결에 향을 풀어 무릉도원 이루리라. 여름이면 열매 맺어 뭇새들의 모이를 보시하며 노래 부르게 하고, 가을이면 색동옷 갈아입고, 겨울이면 빈 몸으로 동안거에 들어 명상에 잠기며 수행을 하고 싶다. 한 그루 나무가 되는 상상은 저승길도 환히 밝혀 꿈속의 도원경을 노닐게 된다. 가장 좋아하는 나무 한 그루 정해 놓고 이승을 하직할 때면 그와 더불어 영원히 상생했으면…. 살아 온 흔적은 남은 이의 가슴에 살아 숨 쉬는 기록물로 남겨두고 자연으로 돌아가 영생은 맑고도 향기로운 여운을 남기리라.

 

김정희(시조시인· 한국시조문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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