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347)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347)
  • 경남일보
  • 승인 2017.01.17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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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347)

“저도 뒤늦게 알았어요. 그런 줄도 모르고 내 생각만 하느라 너무 성급하고 냉정하게 굴었던 게 에나에나 참 후회스럽고 미안해요.”

양지는 후끈 뜨거워지는 눈을 가리며 오빠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아, 나는 왜 이런가. 양지는 이마를 벽에 기댄 채 눈을 뜨지 않았다. 뭐라고 그녀가 해야 할 바를 오빠가 조언하고 있었지만 또렷하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리는 산만하고 끼니도 거른 뱃속의 허기가 탈진감을 몰고 왔다.

안으로 들어오니 호남이와 아버지가 빈소를 꾸미고 있었다. 손수 쓴 지방을 붙이고 난 아버지는 호남이가 주둥이를 벌리고 있는 검은색 비닐 백 속에서 꺼낸 명태포와 밤, 대추 따위를 접시에 담아 제단 위에다 진설했다. 양쪽으로 촛대를 세우고 향로도 놓았다.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는 양지를 발견하고 호남이가 다가오더니 큭, 하고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웃음을 토했다.

“언니야, 아부지 좀 봐라. 그래도 니 셍이가 사람 통 못쓰게 처신하지는 안했는갑다, 하시더마 저런다. 나도 사실 그 아줌마가 여게까지 와서 죽은 기 언니 니 기 살리줄라꼬 연극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 있쟤. 천리 길 먼데 여기까지 찾아올 정도라 카모 예사로 생각는 사이가 아니라꼬 사람들도 그라더라.”

그럴지도 몰랐다. 그러나 왠지 쑥스러웠다. 추여사와 강사장의 깊고 두터운 우정을 염두에 두고 했던 거절도 아닌데 가족들에게 다른 면으로 비친 모양이다. 새삼스럽게 추 여사의 죽음이 안쓰러웠고 자신의 처세에 스스로도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호남이 지어내는 의도적인 언니 기 살리기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강 사장을 물었다.

“손님은?”

“응, 전화 좀 하고 온다고.”

어디서 구했는지 조그만 국화분 두 개를 아버지가 가져다 놓자 빈소 분위기가 그런 대로 갖추어졌다. 불 붙여서 향을 꽂고 잔을 올리는데 강 사장이 들어왔다. 어디서 술을 마셨는지 생소주 냄새가 났다. 그리고는 고대도 못 삭인 원망이 막대기처럼 빳빳한 음성으로 제단을 마주하고 서서 독백하기 시작했다.

“추 영자, 정말 이렇게 사람 뒤통수 쳐도 되는 거야? 너랑 나랑 무슨 원수가 져서 이렇게 끝을 맺아야 되는가 말이야!”

양지가 금방 부어놓은 잔을 퇴주 시키지 않고 스스로 마셔버린 강 사장은 거퍼 몇 잔의 소주를 선 채로 자작해서 들이켰다. 감정을 억제 못한 거칠음이 드러나는 손으로 이번에는 병째로 술을 기울였다. 그 모양을 보고 있던 아버지가 양지에게 일렀다.

“여기 일은 내가 볼텡게 니는 사장 모시고 들어가거라. 네 오래비가 요 앞 여관에다 방 잡아 놨을 끼다. 저이라꼬 맴이 좋겄나. 먼 길에 온 사람을 우리 할 도리는 해야 예가 되는 기다.”

말씀은 고마웠다. 그러나 아버지는 무슨 이유일 것인가. 생전 듣지도 보지도 않은 사람의 장례치레를 아버지께로 미룰 턱이 없었다.

“아버지나 들어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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