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 무렵 아이들을 데리고 바닷가에 나간다. 하늘이 온갖 색으로 물들여질 때 아이들을 바닷가 몽돌해변에 앉혀놓고 하늘의 변화를 보게 한다. 지금 저 하늘에서 너희들이 무슨 색을 보았니 하고 물어보면 참 다양한 색을 이야기한다. 빨주노초파남보는 기본이고 물색 하늘색 땅색 나무색 등등. 그런데 한 아이가 엄마색이라고 한다. ‘엄마색’, 나는 어리둥절해서 다시 물어보았다. 무슨 색을 보았다고? ‘엄마색’, 아이는 다시 또렷하게 엄마색이라고 말한다. 그 아이에게만 보이는 엄마색은 어떤 색일까.
고대 사가들은 깨어진 기와조각에서 그 시절의 풍물을 읽어내고 사회상과 역사를 알아낸다. 그런데 바닷가 몽돌밭을 헤집고 다니며 돌을 줍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수석가라는 사람들이다. 작은 돌 하나를 주워들고서 이루 형언할 수 없는 표정으로 감탄을 하고 있다. 작은 몽돌에 흐릿하게 새겨진 여인의 형상을 보고 저렇게 감동하고 있다. 신의 작품이 아니라 신의 방치가 만들어낸 저 여인이 나를 만나기 위해서 수억 년을 저렇게 파도에 부딧히고 쓸리면서 기다리고 기다리다 드디어 나를 만나게 됐다고 미친 듯이 감동한다.
아이의 엄마색과 돌 줍는 사람의 연인처럼 낱낱의 생명들이 지닌 독립된 가치들의 이야기, 아직 다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들어보아야 한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기수역에 살고 있는 대추귀고둥이 있다. 물속에서는 아가미호흡을 하고 육지에서는 폐호흡을 할 수 있는 이 고둥은 지금 멸종위기종이다. 지금 열심히 이 친구와 사귀어서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아야 하고, 음습한 숲속에 살면서 오월에만 번식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팔색조.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운 깃털을 만들어 가질 수 있을까. 이 친구도 멸종위기종이다. 아직 우리가 알아내지 못한 저 생명들의 가치들이 사라지기 전에 저들과 더욱 친하게 지내면서 들어보아야 한다.
노을에서 보는 아이의 엄마색, 몽돌밭에서 돌 줍는 사람이 만난 억년의 연인과 기수역에 살면서 물속에서도 호흡하고 육지에서도 호흡하는 대추귀고둥의 이야기와 바닷가의 습한 숲속에서 노래하는 팔색조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다. 아니 더 들어야 한다. 그래야 예의를 지킬 수 있다. 자연과 생명에 대한 예의를….
조세윤((사)경남문화관광해설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