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57)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57)
  • 김지원
  • 승인 2017.03.13 14: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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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57)

양지는 들고 있던 정자어머니 몫의 꾸러미를 노파에게 주어버리고 돌아설까 하는데 이때껏 마루 위에 있던 노파가 신을 신고 내려섰다.

“거 뭐라 칼판에 고종오빠한테 알아 보모 알끼거마는, 정자가 그게 와서 괴기를 산다꼬 정자 저어매가 카던데, 거서 가깝다카지 아마.”

손보지 않은 문설주가 기우뚱하게 어긋나 있는 부엌문을 일없이 열었다 닫았다하며 아쉬운 듯 노파가 서성거렸다. 자식들과 반목하는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도 곧 자신의 이야기인 듯 궁상스럽게 여겨지는 눈치였다.

“알겠습니다. 이거 그럼 방에 계시는 아주머니들이랑 국이라도 함께 끓여 잡수이소. 같이 계시는 분들과 담배도 한 갑씩 갈라 피우시고예.”

양지는 정자어머니 몫의 고기꾸러미를 마저 주인노파의 손에다 넘겨주고 사립으로 향했다.

“혹시 모린깨 정자한테나 한 번 물어봐. 그 집 딸 정자랑 동창이랑깨 친구도 만나 볼 겸. 말이 났으니 말인데 정자 땜에 속이 옥달복달하던 참인데 집에서는 또 그런 끔찍한 일이 있었은깨 속이 더 복잡 안하겠나. 정자도 너무 하제 지도 살만큼 사는 기, 지 직장 댕기라꼬 언내 다 키아준 저거 어매로 그라모 안되제. 여어서 그런 소리 들었다카지말고 은근히 좀 타일러. 생불이 틀어지모 안 된다는 옛말이 안 있나. 살아생전 부모한테 잘하는 기 절에 가고 교회 가서 돈 바치고 절하는 것 보단 났다. 아, 아니 할 말로 부처님 예수님은 돌봐야 될 신도가 쌔고 쌨지만 부모 귀신이 돌볼 신도는 저거 자식들 뿐 아이가.”

배웅삼아 따라 나온 노친네가 염체 없는 듯 고마운 듯 손에 들린 꾸러미와 양지를 번갈아 보며 비밀스러운 정보나 되는 것처럼 필요 없는 말까지 일러주었다.

바람결에 사각거리는 대숲바람 소리를 들으며 양지는 천천히 고샅길을 걸었다. 송장 집합소라고, 어머니가 언젠가 동네 노인네들이 모여서 노는 곳을 일러 하던 말이 떠올랐다. 그 쭈그렁바가지 늙은 얼굴들이 거느리고 있을 삶의 애환들을 하나 둘 짐작해 본다. 자신들을 위해서라기보다 남편이나 자식들로부터 비롯된 아픔과 슬픔들이 대부분인 무지하고 선량한 여인들의 저 어지러운 주름살. 가난이 죄라고, 자신들이 대적해서 물리치지 못하고 대물려 준 가난에 대한 죄책으로 어미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억울한 늙은이들.

정자어머니는 옛날 면서기의 부인이었고 지서 차석의 안사람이던 사람도 거기 있었다. 젊었을 때 잘 나가던 여인네들이라 그들의 노후는 울타리인 자식들의 두터운 보호 속에 외롭거나 고통스러운 일 없이 더욱 웅숭깊고 풍요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제 무슨 걱정이랴. 삶의 무게를 가뿐히 내려놓고. 겉으로 보기는 그랬다. 은퇴한 늙은이들이 가을 울타리 밑의 가랑잎처럼 모여앉아 거저 즐겁게 놀고 있는 것이려니 너무나 무심히, 현역에서 물러나 있는 평화스러움만을 상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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