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73)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73)
  • 경남일보
  • 승인 2017.03.29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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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73)

뭐라고 양지가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그녀는 다시 얇은 입술을 잽싸게 움직였다.

“수영장 가는데 시장에서 호남일 만났지 뭐고. 한 번 보고 싶었는데 잘됐다 싶어 애프터도 빠지고 곧장 달려 왔잖어.”

“수영 갔다 온 사람 같지도 않게 깔끔해.”

“야아, 촌스럽게 누가 목욕가방 들고 젖은 머리 표내고 다니냐.”

“이제 보니 코 잘 찡그리는 네 인상하고 예전 모습이 조금 되살아난다. 너 숙제는 맨 날 옆집 오빠가 해주고 시험 볼 때는 커닝을 해서 벌도 서고.”

양지도 조금 꼬집을 거리를 찾아낸 김에 유치한대로 반격을 해 본다.

“으흐흐흐, 그랬지. 학교 우등생이 사회 열등생이고 학교 열등생이 사회 우등생인 거 내가 몸으로 증명한다 아이가.”

“그래, 참 좋아 보인다, 넌 사투리도 별로 안 쓰고 세련된 게 문화생활도 수준 높게 하는 모양이다.”

“지금이 조선시대가. 티비가 있는데. 보고 듣고 대로 따라하는데 한 나절도 안 걸린다. 서울보다 더 서울시런 것도 많다. 시골하고 서울하고 막 비빔밥 세상인데 너야말로 참 촌시런 소리한다. 그 중에서도 내가 좀 앞서긴 했지만 호호호….”

“그래 우리 어릴 때부터 얼마나 원하던 세상이고. 네 모습 확 달라진 걸 보니 잘 사는 것 같아서 보기도 좋다.”

“얘도 촌시럽게 와 이라노. 집집마다 티비가 있으니 촌닭이 눈 빼 먹는다고 서울보다 더 앞서 가는 것도 많다.”

그러던 정자는 또 곧 죽을 듯이 인상을 쓰며 과장스레 상체를 흔들고 손사래를 친다.

“야, 말도 마라. 나 개인적으로는 되는 게 하나도 없다. 하나도 내 편은 없어. 남편이나 자식은 또 그렇다 치고 엄마까지 내 속 썩히는 거 있지. 아까도 전화로 한 판 하고 나왔는데 너 우리 엄마 알잖아. 샘도 많고.”

엄살 섞인 투정 사이에 뜻밖에도 불쑥 엄마 이야기가 딸려 나왔다. 마을에서 들었던 모녀간의 불화가 거짓 아니며 생각보다 심각함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었다. 말이 나온 김에 그냥 넘어가서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뜻밖의 일 때문에 너네 엄마께 폐를 많이 끼쳤어. 인사드리러 갔더니 안 계셔서 인사도 못 드리고 그냥 왔어.”

“우리엄마한테 무슨 폐를 끼쳤는데?”

금시초문인 듯 한 반문에 양지는 잠시 할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짜했을 소문을 정자가 듣지 못했다니. 마을에서 들은 대로 모녀간의 단절이 깊은 골을 이루고 있음이었다. 딸 정자집으로 정자어멈이 안 갔을 거라던 말도 언뜻 부각되었다.

“응, 그럴 일이 좀 있었는데 별건 아니야.”

“근데 넌 잘 나간다고 소문만 내놓고, 와 여기 이라고 눠있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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