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배가 아파요. 집에 가야해요.” 1교시까지도 아무런 이상 없이 밝은 표정으로 수업을 받던 B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폴짝폴짝 뛰어오른다.
“어디가 얼마나 아파서 그러니?” “일단은 양호실에 가서 어디가 아픈지 살펴보고 소화제 처방을 받으면 안 될까?”
“안 돼요. 엄마한테 빨리 전화해야 해요. 큰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바쁘게 학부모와 통화를 해서 학교 앞까지 데리러 온다는 약속을 받고 B를 집으로 보냈다. 1시간 후 말끔한 표정으로 B는 교실로 돌아왔고 배가 아프다는 소동은 조용히 묻혀갔다.
우리 교실만의 문제가 아니라 슈퍼맘을 살아야 하고 더 잘 살아야 하는 이 시대 모든 자녀가 한 번씩 혹은 자주 겪는 분리불안의 어둠이다. 부모의 양육을 충분히 지지해주지 못한 우리 사회가 껴안아야 하는 어두운 자화상이다.
‘잘 살아보세’란 구호가 물질적인 축적이던 시대는 이미 구시대적 발상이다. 더 가치 있게 살아간다는 것은 개인의 정서적 풍요와 더불어 사회문화적인 풍요란 구조적인 덕목까지 함께 성장해야 잘 사는 사회가 완성된다. 들판 여기저기서 함성처럼 다투어 피어나는 연분홍 봄꽃처럼 우리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나누는 충분한 양육과 따뜻한 교류의 시간을 허락하는 아름다운 사회를 기다린다.
B에게 학교에는 엄마처럼 따뜻한 선생님이 계시고 힘들 때 도와주는 친구가 있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
“B야, 학교는 무서운 곳이 아니야. 친구들이랑 선생님은 네가 편안해지도록 기다려줄게.” 교실 창밖으로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슬금슬금 안개가 칠봉산 자락을 타고 내려온다. 4월의 들판은 하얀 민들레 꽃씨와 아이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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