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80)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80)
  • 경남일보
  • 승인 2017.03.29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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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80)

“결과만 가지고 너무 그라지 마이소.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어예. 그렇지만 마음 밑바닥은 항상 춥고 서러웠다고예.”

“그래서 또 애비 탓으로 돌리는 기가? 똑똑한 년, 순천지자는 흥하고 역천지자는 망한다꼬 옛말에도 있다. 천리를 그릇 치고 순리를 역행하모 안 된다, 이 말 인기라.”

“그래, 악담을 하이소.”

“내가 썽 안 나게 됐나. 반피 보다도 못한 년들. 니는 그래도 배운 것도 많고 사회 물도 엔간히 많이 묵었은깨 그래도 뭣이 좀 나을 끼라 여겼더마 무지랭이 니 에미나 호냄이 저것하고 우찌그리 똑 같노. 아이다, 저울이 있어서 단다카모 외로 더 몬한기제.”

힐난의 방향이 자기인 것을 안 양지는 숨을 죽였다. 그렇잖아도 흔들리는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있던 중이었다. 아버지에게 칭찬을 들어본 기억도 없었고 또 그런 기대를 했던 적도 없지만 지금 이 지경에 처해서 까지 힐책을 당하는 것은 아픈 상처에다 소금을 뿌리고 휘젓는 것만큼이나 잔인한 아픔이다. 그러나 양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이제 와서 누구 잘잘못을 따진다는 것이 시들하고 열없었다. 한데 호남은 가만있지 않았다.

“아픈 언니 앞에서 할 소리가 따로 있지, 아부지는 또 뭘 그리 잘했다꼬 우리만 보모 큰 소리 칩니꺼.”

“야, 이년아. 꼭 손에 쥐어주는 것만 다냐? 눈앞에 뵈는 것만 해주는 기가? 그렇다카모 저 산천이 니한테 뭐해주더노. 저 하늘이 니한테 뭐해주더노. 그렇지만 그것들이 없이모 니년이 살 것 겉나. 자석도 낳아 본 년이 니년은 입이 광저리 구녕 겉애도 말할 자격 없다. 에린 자석은 지끔 우떻키 지내고 있는지도 모리고.”

억하심정을 발산시키는 아버지는 두 딸을 향해 눈을 흘기면서 고르지 못한 호흡까지 좌충우돌이다. 결 깊은 구원으로 빳빳하게 곤두선 줄기는 아버지만의 것이 아니다.

양지는 팔에 연결된 주사튜브를 우두둑 뜯어버리며 침상에서 일어섰다.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도 못했던 아버지와 호남의 두 눈이 반목했었다는 흔적도 없이 동시에 호동그래지며 양지에게로 쏠렸다. 호남이 얼른 양지의 손을 잡아 주저앉히려 했다.

“언니 와 이라노!”

“놔!”

양지가 머리끝까지 뻗어있는 성깔대로 힘을 다해 뿌리치자 덜렁거리던 링거 병이 병실 바닥으로 떨어지며 박살이 났다.

“나가. 너도 나가고 아버지도 나가이소!”

양지는 주사액으로 젖어오는 발에 슬리퍼를 꿰자 아버지와 호남의 손을 양손으로 잡아끌며 문 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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