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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색 배려칸 누구를 위한 배려인가[시민기자] 일상에서 부딪치는 여성들의 불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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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20  22: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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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박현영미디어기자


#사례

퇴근시간이 조금 지난 저녁 7시, 지하철 여성배려칸을 탄 A씨. 객실 내에는 남성이 절반 이상이고, 핑크색 안내문이 붙어 있는 임산부 배려석에는 이어폰을 낀 젊은 남자가 앉아 있다. 비좁은 지하철 출입문 근처에 서있는 동안 60대 남성의 성난 목소리가 울렸다.

“남성배려칸은 어디있노? 여자들만 편하라고 하고, 남자는 사람 아이가?”

노인이 욕설을 섞어가며 열변을 토하자, 주변에 있던 20대 여성 몇몇은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소동을 피해 눈길을 돌린 A씨는 출입구 안내문에 붙은 낙서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여성배려칸을 안내하는 핑크색 안내문에는 ‘세금낭비!’라는 낙서가 큼직하게 적혀 있었다.

◇부산도시철도 여성배려칸 운영 상황

부산도시철도는 2016년 6월부터 출·퇴근 시간인 오전 7~9시와 오후 6~8시, 지하철 1호선에서 ‘여성배려칸’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여성배려칸은 임산부와 영유아를 동반한 여성승객에 대한 배려 문화 조성과 성범죄 예방을 위한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 이미 운영 중인 여성전용칸은 역시 대부분 여성 성추행 및 성폭행을 계기로 시행되었다. 일본의 경우 20~30대 여성의 64%가 지하철 안에서 성추행을 겪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서 2000년부터 여성배려칸이 운영됐다.

국내에서도 지하철에서 발생한 성범죄가 전체 범죄의 60%에 달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2년 700건에서 2015년 1519건으로 3년 만에 2배로 증가했다. 최근에는 차량내의 성추행 문제 뿐만 아니라 여성을 대상으로 한 몰카 촬영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여성배려칸 운영에 대한 시민 반응

‘여성배려칸’을 이용해 본 여성들은 대부분 ‘마음이 놓인다’며 만족한다는 반응이었다. 직장인 김 모 씨(30대)는 “직장 특성상 치마를 입어야 해서 항상 시선을 의식하고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었는데, 여성배려칸에서는 그런 스트레스가 덜한 것 같다”고 말했으며, 대학생 이 모 씨(20대)는 “만원 지하철 안에서는 불필요한 신체 접촉 때문에 불편했는데, 여성배려칸은 남성승객이 적을 것 같아 마음이 편하다”고 토로했다.

대중교통의 여성전용칸은 남녀의 물리적 분리를 통해 성범죄 예방을 추구하고 있어 범죄노출을 차단할 수 있는 반면 일반 칸에 타는 여성은 성추행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수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성범죄 발생 시 여성 피해자에게 여성전용칸에 타지 않았냐는 질책이 쏟아질 수도 있다는 것. 굳이 보호구역을 만들어 예비 피해자를 분리하는 조치를 취하는 자체가 ‘여기서만 지키면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일으킬 수 있다.

앞선 사례와 같이 일부 남성들의 불쾌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남성전용칸도 신설되어야 한다”며 부산교통공사의 사과를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심지어 온라인으로 ‘여성배려칸 운영 반대 서명운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마치 강남역 20대 여성 살인사건 때와 비슷한 양상이다. 성의 차이가 부른 혐오의 양상이 불러일으킨 참상을 이미 경험한 사회로서 보다 성숙한 성범죄 예방의 대안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상대적 불안감 인정해야

인적 드문 곳, 어두운 길, 밀폐된 공간 속에서 혼자 있을 때 여자들은 혹시 누군가 나에게 위해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한다. 어디서 닥쳐올지 모르는 위험에 대해 항상 긴장한다.

여성이 물리적 약자로서 느끼는 일방적인 공포는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이해하기 쉽지않다. 남성이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에게 공격당해서 피해를 볼만한 일은 최근 유나이티드 항공사에서 발생한 탑승객 강제 하차와 같은 ‘특이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경험하기 어렵다.

하지만 여성들이 사회현실에서 흔히 경험하게 되는 성차별적 인식의 벽은 높다. 여성들이 느끼는 상대적 불안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단계를 넘어 일부 남성들이 보이고 있는 ‘역차별 주장’이나 ‘잠재적 범죄자 취급이냐’는 등의 과도한 피해의식은 과연 적절한 대응인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 저변에 존재해 온 성차별적 의식이 반영된 안일한 성범죄 인식에서 기인한 것은 아닌지 한번쯤 뒤돌아 보아야 할 시점이다. 차별적 시선에서 벗어나 남녀 서로가 공감능력을 키우는 일은 동반자로서 양성평등 사회를 위한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오진선 시민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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