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2 (390)
그날, 곧 이어 돌아 올 것이라 여기며 기다린 호남은 끝내 양지의 병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22
절연이라도 선언하듯 화를 내고 떠났던 호남이 헐레벌떡 찾아온 것은 거의 보름이 다 됐을 무렵이었다. 양지를 보자마자 건강 회복에 대한 인사보다 뜻밖의 말을 먼저하며 손을 내밀었다.
“언니야, 돈 좀 주라. 급한 대로 한 300만원 만.”
“얘도 갑자기 와서는 그런 큰돈을 뭐에 쓸 건데?”
“이유는 묻지 말고 퍼뜩 좀 내놔라.”
“너 장 사장 오빠한테도 돈 빌려 갔다며? 도대체 뭣땜에 그라는데?”
“오빠도 참. 언니한테 말하지 말랬는데. 좌우튼 얼른 좀 도오.”
“아유, 술 먹고 노름 하고 떡 사 묵고 그랄란다. 얼른. 쫌 급하다.”
“누가 그런 농담 하쟤? 혼자 사는 얘가 저도 돈 있으면서, 좀 있으면 월급도 받을 건데 갑자기 나타나서 맡겨 놓은 돈 내노란 듯이 조르면 낸들 쉽게 은행가겠어? 오빠가 하는 짐작대로 너 혹시 돈놀이 하는 기가? 그때도 사람 저 만큼 세워놓고 돈 받아서는 그쪽으로 넘겨주더라며?”
그 순간 잡힌 꼬리가 간지러운 듯 몸을 꼬던 호남이 하하 웃었다. 돈으로 돈을 버는 장사. 양지는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일수, 돈놀이꾼, 그게 얼마나 악랄한 일인지, 그런 짓으로 돈 벌 생각을 하다니 호남아-.”
“언니야, 돈이란 돌고 도는 기다. 고인 물 퍼서 목이 말라 벌겋게 타들어가는 식물한테 주듯이 필요한데 찾아서 숨통 열어주는데 그게 뭐가 나빠. 오히려 돈이 제 역할 하는 거 아이가. 언니 니가 잘하는 말 있듯이 주영이 델꼬 오는 거, 요새 아아들은 부모 점수도 용돈 많이 주는 쪽으로 매긴다카는데 나도 돈 많이 벌어야 될 거 아이가.”
“그게 만약 나쁜 마음, 아니 갚을 능력이 없어서 회수가 안 되면 너는 그냥 떼이고 있겠어? 일수꾼, 고리대금업자, 우리가 읽은 책 중에 있던 그 유명한 샤일록 같은 인간이 될래?”
그 순간 호남의 표정이 발끈해지며 붉으락푸르락 했다.
“샤일록이 뭔데?”
“약속한 날 돈을 갚지 못하는 채무자의 가슴에서, 돈을 못 갚을 때 받기로 약속했다면서 살 한 파운드를 도려내겠다고 우기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돈 벌레.”
동생의 의중을 정확하게 읽는 수단으로 자극적인 표현만 골라 낸 양지의 설명에 호남은 버럭 드높인 목청으로 화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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