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1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우리 반에는 다리가 불편한 학생이 있었다. 그 친구를 ‘라이언’이라고 해두자. 중학교 때부터 라이언에게 도움을 주었던 친구들이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도 같은 반에 배정받아 라이언을 도와주기를 자처했다. 라이언 역시 다리가 불편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꼭 직접했다. 급식시간이면 식판을 들 수 없었지만 수저를 직접 가져와 친구들의 자리를 챙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서로 배려하는 모습에서 든든한 우정이 느껴졌다.
라이언이 선사한 달콤한 기억도 생각난다. 라이언은 진로를 찾는 와중에 배운 쿠키와 초콜릿을 만들어와 같은 반 친구들에게 나눠 주었다. 불편함을 감수하며 만들었을 그 소중한 과자를 우린 너무 맛있게 먹었고, 그 달콤함이 오래 간직됐다.
춘계 야외학습을 갈 때의 일이다. 부산까지 긴 버스여행에 다리와 허리통증이 심해질까 염려되어 조심스럽게 같이 갈 수 있겠냐고 물었다. “네 선생님 소풍갈 수 있어요”라며 환한 대답이 돌아왔다. 섣불리 걱정한 내가 오히려 미안해져서 “그래 아프면 샘이랑 앉아서 놀면 되지”라고 어설픈 답변을 건넸다. 국제시장의 복잡한 길들을 누비며 그 친구는 친구들과 소통하고 부산의 문화를 즐겼다.
고등학교에 올라와 친해졌던 친구 한명이 있었다. 다리 수술 때문에 중학교 공부가 부족했던 라이언에게 기초 수학을 가르쳐주던 모습이 가끔 눈에 띄었다. 그 친구가 하루는 감기로 조퇴를 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친구에게 라이언의 수학시간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부탁받은 친구는 흔쾌히 공부도우미 역할을 맡아주었다. 한창 경쟁에 내몰린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나눔이었다.
이렇듯 우리 아이들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있지만 함께 어우러져 생활하며 저마다의 방법으로 서로를 배려하는 방법을 스스로 깨우쳐 나가고 있다. 매 수업시간마다 교사가 주는 교과서 속의 지식 전달보다 아이들끼리의 세상에서 더 많은 인생을 배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리가 불편한 라이언과 친구들이 마음껏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자라나기를 바란다. 그때에도 서로 간의 우정을 소중히 다져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열리기를 5월의 따스한 바람 속에서 기대해 본다.
이윤정(경해여고 수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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