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 수목 띠 풀어주자
안명영(수필가·전 명신고교장)
[경일칼럼] 수목 띠 풀어주자
안명영(수필가·전 명신고교장)
  • 경남일보
  • 승인 2017.05.08 09: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산은 계절따라 색이 달라진다. 겨울에는 바람을 피하려 잎을 떨어뜨리고 활동을 최대한 줄이며 주홍색이다. 봄은 노란색에서 파란색으로 된다. 따뜻한 기운이 대기에 퍼지면 만물은 기지개를 켜고 기다렸다는 듯 빈틈없이 연한 싹을 내밀어 부채꼴이 되며 옅은 노란색이다. 산의 여기저기에 상수리나무, 밤나무 등이 노란 점을 찍는데 다음 색으로 변할 것을 기대해도 좋다는 기미를 준다. 꿋꿋이 하나의 모습을 보여 줄 것 같은 소나무마저 노란 가루를 뿌린다. 봄의 색으로 단장한 산은 깃 깨어난 병아리를 보는 듯하고 충분히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오월은 수목에 물이 오르며 활기 충만하다. 들뜬 마음은 발걸음을 산으로 향하게 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바위를 상처내고 자리 잡은 이름과 알림판을 수목에 단단하게 고정시킨 띠를 본다면, 남명 선생은 유두류록에서 바위에 새겨진 이름을 보고 ‘대장부의 이름은 마치 푸른 하늘의 밝은 해와 같아 사관이 책에 기록해 두고 넓은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의 입에 거론되어야 하겠는데 구차하게 원숭이와 너구리가 사는 숲속 덤불의 돌에 이름을 새겨 영원히 썩지 않기를 구한다. 이는 나는 새의 그림자만도 못해 후세 사람들이 날아간 새가 과연 무슨 새인 줄 어떻게 알겠는가? 두예(杜預)의 이름이 전하는 것은 비석을 물속에 가라앉혀 두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의 업적만이 있었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등산로 입구 잘 보이는 곳에 자연보호헌장비를 볼 수 있다. 사람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의 혜택 속에서 살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자연의 고마움을 잊어버리기에 돌에 새겨 교훈을 삼고자 하며 학교 및 사회의 각 분야에서 교육을 통하여 체질화될 수 있도록 하고 생활 주변부터 깨끗이 하여 국토를 푸르고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야 한다고 마무리하고 있다.

흔치 않지만 ‘담배꽁초와 쓰레기를 버리지 맙시다’라는 글을 새긴 아크릴판을 나일론 띠로 수목에 고정시킨 장면을 볼 수 있다. 수목은 자람을 멈추지 않는다. 띠를 고무줄로 하였다면 배려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겠는데 나일론 띠는 지혜롭지 못하다.

바위에 새긴 이름은 칡덩굴 등에 가려지겠지만 단단한 끈은 점차 체관부와 형성층을 압박하여 당분 이동을 어렵게 하여 성장을 저해하며 줄기에 파고들어 흉한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허리띠를 풀어야 즐거운 식사가 됨을 알면서 수목에게는 몰라라하는 것이다.

사람과 나무는 공생관계이다. 사람에게 산소가 필요하고 나무는 이산화탄소가 있어야 하는데 서로 주고받는다. 수목에 청진기를 대고 귀를 기울이면 물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이는 생명의 소리이며 동심을 깨우는 체험이고 자연과 소통하는 것이다. 나무에 물이 잘 흐르게 수목 띠 풀어주기 운동이 전개되었으면….
 
안명영(수필가·전 명신고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