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 살림의 발견
황숙자(시인)
[경일칼럼] 살림의 발견
황숙자(시인)
  • 경남일보
  • 승인 2017.05.18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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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의 지질한 청춘이 자기 바지가 어디 있는지 일하러 간 엄마에게 전화로 짜증을 부리고 있다. 성인이 되면 홀로 견뎌야 할 엄연한 생존의 무게가 있다는 걸 아직 깨치지 못한 모양이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남성 후보들의 웃지 못할 이슈가 된 것 중 하나가 집안일을 얼마나 하는지에 대한 것도 있었다.

심상정 후보의 남편은 평생 집안 살림을 하고 아내의 활동 뒷바라지를 하는데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 듯 알려졌다. 가끔 쓰레기를 버리고 선심성 설거지를 해주는 정도 가지고는 명함도 못 내밀 파격이다.

연애가 꽃다발이라면 결혼은 잡초라 했던가. 요즘 졸혼으로 유명한 일흔셋의 배우 백일섭은 혼밥, 혼술, 혼잠을 하는 것이 익숙해지니 오히려 편안하고 홀가분하다고 한다. 불통의 결혼생활은 부엌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던 그를 늘그막에 살림하는 남자로 거듭나게 한 것이다.

고령화사회가 되고 직접 일상을 챙겨야 하는 노년세대. 몸이 불편한 할머니를 위해 할아버지가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배우는 광경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부모세대에는 경제권이 곧 권위이고, 여전히 가부장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세상의 새로운 변화와 문화에 차차 적응해가는 것이 노년의 생존력을 높이고 여유 있고 온화한 시간을 보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부부 공동으로 경제적 사회활동을 하는 이들에게는 집안일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의 필요를 느낀다.

집안일에 잘 대처하는 것이 원만한 결혼생활의 유지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시켜서 하는 일보다 스스로 하는 일에 만족도는 더 높은 법. 서로 배려하는 마음만 있다면 남자·여자 역할을 따지지 않고 먼저 시간이 되는 사람이 하면 된다.

사람이 생존해 가는데 필요한 일들에 있어서는 애초에 남자·여자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삶을 온전히 영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때론 그것이 불행한 일이 되기도 한다.

기자들이 집 앞에 진을 치고 온 국민들의 눈이 탄핵된 대통령에게로 향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올림머리를 위해 미용사를 불러들이는 광경. 혼자서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일상생활과 할 수도 없는 고립적 환경이 결국 사람의 의식까지 지배하는 것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삶은 그냥 흘러가는 것 같지만 늘 성가신 문제가 뒤따라 다닌다.

평생 어머니나 아내의 희생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알아서 하는 독립적인 사람. 아들을 둔 어미의 입장으로서는 더 바랄 게 없겠다.

 
황숙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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