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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2 (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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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23  23:5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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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2 (403)

덕산 휘여 진 길로 차가 들어가자 장날인지 사람들이 붐빈다. 덕산 장날이면 지리산 산삼이 동자로 둔갑하여 내려왔다 간다는 어릴 때 들었던 전설도 생각났다.

삼거리에서 북으로 가면 비구니승의 요람인 대원사가 있고 심심산골 유덕골이 있는데, ‘아부지가 아직 간주를 안 타와서 예’ 하며 월사금 때문에 집으로 쫓겨 가던 어릴 때 친구 영순의 아버지가 일했다는 벌목장도 있고 또 별명을 학교 이름으로 잘못 알고 신기하게 여겼던 가랑잎 학교도 있었다.

내원사 뒷산으로 뚫린 산길을 한참 오르면 마지막 ‘빨치산’으로 살았다는 정순덕의 행적으로 묻혀있던 심심산골이 세상에 이름을 드러내게 된 빗점골도 있다. 또 지리산은 겸손을 가르치는 인자의 터전이라는 말도 있다. 그 이유는 방대한 면적을 감안하면 분명 풍부하게 매장된 지하자원도 있을 법 하건만 여신은 치맛단 여미듯이 꽁꽁 숨기고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운 처사가 보내신 분 맞지요? 주지스님이 안내해 드리라고 해서 왔습니다.”

중산리 종점에 차가 도착하자 마중을 나와 있던 중씰한 승려가 지게를 내려놓으며 인사를 했다.

“어이쿠, 안에 뭐이 들었는지 상당히 무거운데요.”

야무지게 묶은 박스가 무거워 보여 양지가 거들자 고맙다는 표시인 듯 불평 아닌 불평이 중얼중얼 승려의 입에서 나왔다.



“보낸 것 잘 받았느냐고, 좀 전에 자운이 전화 했던데요. 들어오셔서 차나 한 잔 하고 가시지요.”

부처님 참배를 하고 나오니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던 주승이 찻상 앞에다 방석을 바로 놓는다.

“오빠가 일부러 저를 보내신 거 잘 압니다.”

양지가 다소곳하게 인사를 하자 들킨 속내에 대한 쑥스러움을 지우느라 주승도 얼른 답례의 고개를 숙였다.

보온병에 있던 물을 찻주전자에 부어놓고 작설차 넣는 동작도 참 정일하다. 우러난 찻물이 앞에 놓인 잔에 채워질 동안 양지는 간소한 일용품들이 정갈하게 자리 잡고 있는 방안을 시선으로 가만히 둘러보았다. 시루떡처럼 켜켜로 쌓여있는 경전 중에는 구약이니 신약이니 성경도 있다. 그 옆에는 어느 신도가 선물한 듯한 작은 목부처가 갸웃 고개를 돌려 양지를 보고 웃는다. 회색 가사와 장삼이 약간 낡은 밀짚모자와 한 쌍으로 어울려 횃대에 걸려 있고 그 옆의 벽면 아래는 작은 텔레비전이 놓여있는데 켜 있은 화면에는 먼 곳 사막 한 가운데의 불교 성지를 장면 바꾸어 가며 보여주고 있다.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서 극한의 작업을 하면서도 하나같이 평온하고 웃음 띤 사람들의 모습이 거짓말처럼 아주 인상적이다. 주승과 맞춤한 손길 옆에는 옻칠한 작은 목함이 있는데 넘칠 듯 소복한 염주 알이 알알 또록또록 눈길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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