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학자, 고추가 살아 온 세월을 추적하다
식물학자, 고추가 살아 온 세월을 추적하다
  • 연합뉴스
  • 승인 2017.06.0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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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페퍼로드’서 읽는 매운 맛
 고추의 원산지는 중남미 적도 부근으로 기원전 8000~7000년부터 식용으로 쓰였다고 한다.

 지금도 페루, 볼리비아 등지에는 야생종이 자라는데, 심하게 매운 데다 희한하게 작은 열매가 하늘을 향해 열리고 잘 떨어지는 특징이 있다. 지금의 식용 고추는 사람들이 수천 년 동안 덜 매우면서 크고 잘 떨어지지 않는 것을 골라서 재배한 결과로 보인다.

 신간 ‘페퍼로드’(사계절 펴냄)는 오늘날 인류의 식탁을 지배하는 주요 작물로 자리 잡게 된 고추의 기원과 재배화 과정, 전파 경로, 각 지역에 미친 영향을 상세히 소개한다.

 저자인 야마모토 노리오 일본 국립민족학박물관 명예교수는 식물학과 민족학 분야 전문가로, 1968년 대학원생 시절 안데스 산맥에서 우연히 발견한 야생 고추에 매료돼 50년 동안 전 세계를 누비며 고추의 문화사를 추적해왔다.

 책에 따르면 고추가 매운 이유는 야생종을 통해 추정할 수 있다. 야생 고추 열매가 위로 열리고 쉽게 떨어지는 것은, 새들에게 쉽게 발견돼 먹힘으로써 종자를 퍼트리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새들의 소화기관을 거쳐 배설된 고추씨는 발아율이 탁월하게 높다는 게 실험 결과다.

 그렇다면 매운맛도 새들을 위한 것일까. 실제로 매운맛을 싫어하는 대다수 동물과 달리 새들은 매운맛을 즐긴다고 한다. 새가 고추를 좋아한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사람이라면 거의 죽을 지경인 2% 농도의 캡사이신 용액을 새들은 아무렇지 않게 먹는다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연구가 있다.

 고추의 매운맛은 새한테만 선택적으로 먹혀 널리 퍼져나가기 위한 번식전략으로서 진화했다고 책은 설명한다.

 중남미에서 처음 재배된 고추가 15세기 말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에 의해 유럽 등 구대륙으로 전해졌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일각에선 다양한 품종의 고추가 세계 각지에서 오래전부터 자생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우리나라에 고추가 전래된 경위도 논란이 있다. 16세기 포르투갈 선교사에 의해 일본에 전해진 고추가 임진왜란 이후 한반도로 넘어왔다는 게 통설이다. 하지만 최근 임진왜란 이전에 이미 한반도에 고추와 고추장이 존재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책은 유럽에선 환영받지 못한 고추가 유독 이탈리아에서만 사랑받게 된 이유, 맵지 않은 대형 고추인 파프리카가 헝가리에서 탄생한 과정, 노예무역을 통해 아프리카에 전해진 고추의 운명 등 고추에 얽힌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일본에선 큰 관심을 못 끈 고추가 한반도에선 풍성한 김치 문화를 낳는 등 음식문화의 혁명을 가져올 수 있었던 건 양국 식문화의 차이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우리나라는 불교 때문에 쇠퇴했던 육식이 고려시대 몽골의 지배를 받으면서 부활한 덕분에, 고추가 고기를 먹을 때 적합한 향신료로써 활용되면서 음식문화 속으로 파고들었다고 본다.

 반면 일본은 19세기 말 메이지유신 때까지 1천 년 이상 불교 영향 속에서 육식 금지령이 유지돼온 탓에 고추의 효용성을 제대로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메이지 시대 들어 카레가 유행하면서 매운맛에 서서히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최용우 옮김. 228쪽. 1만 6000원.

연합뉴스



 
신간 ‘페퍼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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