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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3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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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15  23:3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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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3 (419)

막상 영등포 가는 길을 포기하자 갈 곳이 없었다. 잘 아는 길을 가는 것처럼 부지런히 걸었지만 큰 건물이나 낯선 거리 낯선 사람들 모두 한 입에 아앙 베물고 말 괴물처럼 노려보는 것들뿐이었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섞여 살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양지는 아직 구별하지 못한다. 아까의 그 신사는 정말 나쁜 마음을 품고 나를 심부름 시킨 게 아닌데 지레 겁을 먹고 도망을 쳤다면 나는 아마 나쁜 사람 축에 들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함부로 사람을 믿고 따를 수 없을 것 같았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내 힘으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양지는 다시 일어서서 서울의 낯선 거리를 일이 있는 아이처럼 걷기 시작했다.

어디를 얼마나 뱅뱅 돌았는지 모른다. 이제는 누구에게 길을 묻는 것도 무섭다. 다리는 아프고 지쳤다. 해도 건물에 가려 밤으로 가는 어둑발을 내릴 참이다. 마침 시장이 가까운지 양손에다 몽탕몽탕 무거워 보이는 짐꾸러미를 몇 개나 팔이 늘어지게 든 여자 하나가 뒤뚱 기우뚱 걸어오는 게 보였다. 양지가 서 있는 앞에서 여자는 마침 짐을 내려놓고 서더니 아픈 팔을 흔들어 달래며 이마에 배인 땀을 닦기도 한다.

여자가 다시 짐을 챙겨들자 양지가 먼저 나섰다.

“지가 같이 좀 들어 디릴까예?”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했던 친절이라 저도 몰래 나온 말이다. 양지를 흘끔 쳐다보던 여자가 반색을 했다. 이제부터 시골아이 티가 안 나게 표준말도 쓰고 억양도 고쳐야지 주의했지만 거기까지는 얼른 고쳐지지 않고 저도 몰래 고향 어투가 튀어나와 애를 먹였다.

“짐이 무거운데, 그래 줄래? 안 바뻐?”

들어보니 아주머니의 억양도 남도 쪽이다. 친밀감을 느낀 양지는 생긋 웃으며 몇 개의 짐을 서둘러서 들고 여자의 뒤를 따랐다.

“자 여기다 놔라.”

군침 돌게 자장면 냄새가 풍기는 작은 중화요리집 앞에서 여자가 멈추었다. 짐을 내려놓고 도리 없이 또 어디론가 배회의 길을 나서야한다.

“지 자장면 한 그릇 묵고가모 안될까 예?”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뱃속에서도 아우성치며 양지를 도왔다.

“참 그렇네, 야튼 들어가자.”

맹랑한 어린 것이 운반비를 받겠다는 심산인지 잠시 애매한 표정을 짓던 여자가, 이것 들고 안으로 들어가자. 허락을 했다.

좁고 침침한 식당이었지만 기름때 전 오랜 음식 냄새가 와락 양지를 품어 안았다. 선생님 집 아이들과 같이 먹어 본 요리다. 늘큰하고 감기는 자장면 맛도 맛이지만 달고 새큼한 단무지와 춘장에 찍은 양파 맛은 또 얼마나 도시사람이 된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었던가.

“야야, 손님이다. 얼른 일어나서 자장 하나 맨들어라. 저녁 때 다됐는데 여태 낮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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