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배추 흰 나비
신애리(수정초등학교 교사)
[교단에서] 배추 흰 나비
신애리(수정초등학교 교사)
  • 경남일보
  • 승인 2017.06.19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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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큰일 났어요. 빨리 학교로 오세요.” 출근준비로 바쁜 아침, 핸드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들이 쏟아져내린다. “무슨 일인데 그러니? 배추 흰나비가 죽었어요.” 3학년 과학과 과제는 동물의 한 살이를 관찰하는 일이다. 교실 한쪽에 나비 한 살이 관찰코너를 만들어놓고 알에서부터 나비가 될 때까지를 기다리며 관찰하고 있었다. 어제 아침에 번데기에서 빠져나와 노란 날개를 활짝 펴서 아이들의 시선을 온통 사로잡던 나비가 아침에 와보니 관찰상자 안에서 죽어 있었다는 거다.

“애벌레는 왜 이렇게 작아요. 그 애들은 무얼 먹고 살지요. 왜 엄마가 옆에서 도와주지 않아요.” 꼬물꼬물 케일을 먹고 자라는 애벌레처럼 아이들은 푸른 질문들을 먹고 자란다. 든든한 엄마도 없이 홀로 알에서 깨어나고 케일 잎을 먹으며 네 번이나 몸을 바꿔야 한다는 과정이 몹시 안쓰러운가 보다. 허겁지겁 달려간 교실, 아이들은 침통한 표정을 하며 사육상자 주변에 둥글게 진을 치고 서 있다. “배가 고파서 죽었나 봐요. 어제 나비를 꽃밭으로 보내줘야 했는데….” “아침에 나비가 세 마리 더 나타났구나. 사육장이 비좁아서 빨리 보내줘야겠다. 어디로 보낼지 1교시 마치고 운동장에 가서 꽃이 가장 많은 곳을 찾아보렴. 오늘 시조 글 시제는 ‘나비’로 하자.”

‘연초록/케일 위를/꼬물꼬물/기다가 대롱대롱/매달려/긴 낮잠을/자다가 날개 둘/고생 많았지/팔랑팔랑/춤춰봐.’ 1교시 후 사육상자를 들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학교 담벼락을 감고 빨갛게 피어오르는 줄 장미꽃 정원에서 나비를 보내기로 했다. “어서 나와라 나비야, 이제 꽃밭으로 가야지.” 안타까움과 섭섭함이 함께한 인사를 듣고도 움직이지 않자 결국은 손으로 조심조심 나비를 잡아서 하늘위로 올려 보냈다.

“잘 가라, 꿀 많이 먹고 또 놀러 와.” 손뼉까지 쳐주고 교실로 돌아오는 아이들의 머리 위에는 길쭉한 초록 더듬이가 한 쌍씩 달렸다. 3주간 함께 공부한 배추흰나비 가족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더듬이와 든든한 엄마 아빠가 옆에 있어서 언제든지 손 내밀 수 있다는 기대로 솟아오른 더듬이다. 우리 반 친구들은 벌레의 한 살이 중, 애벌레 첫 껍질을 드디어 벗겨냈다. 유월의 초여름 바람이 달콤한 장미 향기를 몰고 3층 교실까지 따라와 축가를 부른다.
 
신애리(수정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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