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질경이, 시골 빼빼장구
강천(수필가, 경상남도 문인협회 사무차장)
도시 질경이, 시골 빼빼장구
강천(수필가, 경상남도 문인협회 사무차장)
  • 경남일보
  • 승인 2017.07.16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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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
아파트 화단에서 잎이 손바닥만큼이나 풍성하게 자란 질경이를 만났다. 내가 알아왔던 질경이와는 너무 달라서 몇 번이고 확인해 보았지만, 틀림없이 같은 풀이다. 꽃밭에서 고이 자라다 보니 쌈 채소를 해 먹어도 될 만큼 크고 부드럽게 되었지 싶다.

‘빼빼장구’라는 경상도 방언이 있다. 질경이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기도 하거니와, 아주 야윈 사람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식물로서의 빼빼장구는 척박한 땅에서 이리저리 부대끼며 살아가는 풀이다. 농로 한가운데나 길섶에 나서, 발길에 짓밟히고 수레에 치이며 살아간다. 오뉴월 뙤약볕을 맨몸으로 받으며, 아침 이슬 한 모금으로 그 질긴 생명을 꾸역꾸역 이어가는 잡초다. 그러다 보니 잎은 언제나 너덜너덜하고, 잎맥은 운동선수의 근육처럼 단단하다. 다가오는 발길을 피하지 않고 당당히 마주하며, 날 보라는 듯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풀이나 사람이나, 고난스러운 환경을 이겨내며 끈질기게 살아간다는 의미가 담긴 말이기도 하다.

꽃밭에서 포동포동하게 잘 자란 질경이를 보고 있노라니 허여멀건 했던 도시아이들이 겹쳐 보인다. 어릴 때 방학이 되면 도시에 살던 친척 아이들이 시골에 와서 잠깐씩 머물다 가고는 했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온갖 해작질을 해대는 우리와는 달리 하얀 피부에 말끔한 옷차림이 시골 아이들의 기를 죽여 놓았다. 게다가 듣도 보도 못한 그림책과 번쩍번쩍 빛나는 가방까지 들었으니, 우리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겉모습이 멋지면 마음도 예뻐 보이는지 늘 곁에 있는 우리는 젖혀두고 어른들도 도시 아이들만 편애하는 듯하여 밉상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들도 시골아이보다 못한 것이 있었다. 나무를 잘 타지도 못하고, 개구리도 구워 먹을 줄 몰랐으며 신발로 개미를 때려잡지도 못했다. 냇가에서 수영할 때면 멀찍이서 구경만 하고, 복숭아밭으로 기어들어 가 슬쩍(?)하는 재미도 당연히 몰랐다. 미운 짓을 하다가 쫓겨나지도 않았고, 부지깽이에 등짝이 화끈한 맛을 그들은 몰랐다. 겉만 번지르르하였지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어 약간은 말랑해 보였던 모습이 이 도시 질경이와 닮았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옛 생각에 젖었다가, 문득 본질은 간데없고 허세와 변죽만 울리고 있는 나의 현실을 생각해 내고는 쓴웃음을 짓는다. 지금 나는 도시 질경이일까, 시골 빼빼장구일까.



강천(수필가, 경상남도 문인협회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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