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우리는 언제까지 약자들의 죽음을 목도해야 하는가
강문순(전 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장)
[여성칼럼] 우리는 언제까지 약자들의 죽음을 목도해야 하는가
강문순(전 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장)
  • 경남일보
  • 승인 2017.08.09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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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사람의 여성이 살해되었다. 경찰은 지난달 31일, 서울에서 왁싱숍을 운영하던 젊은 여성이 7월 5일 손님을 가장해 들어온 남성에게 흉기로 살해당했다고 밝혔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가해자가 인터넷 매체의 BJ의 영상을 통해 이 피해자를 범죄의 대상으로 점찍었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 사건의 피해자는 혼자 숍(사업장)을 운영하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범죄의 표적이 되어 소중한 목숨을 빼앗긴 것이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지난해의 강남역 살인사건을 떠올리면서 ‘또 여자라서 죽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보다 열등하고 약한 여성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인식이 만연한 상황이기 때문에 여성을 범행대상으로 쉽게 떠올리게 되는 것이 아닌가”, 혹은 “왁싱숍 주인이 남성이었다고 해도 그처럼 쉽게 범행대상이 되었을까” 하는 주장들이다.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그 BJ의 동영상에서부터 이 피해 여성을 성적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드러났다고 전해져 이러한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가진다.

그러나 여자라서 살해되었다는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사건을 ‘인천초등생 살인사건’ 과 비교하면서 여성청소년이 초등생 여아를 살해한 것도 여자라서 죽은 것이냐고 반문한다. 왁싱숍 사건도 이와 마찬가지로 여자라서라기보다 우연히 범죄의 대상이 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를 통해 지난해 강남역살인사건 이후 논쟁이 격렬했던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논의가 다시 활성화되고 있는 것 같다. ‘여성혐오’라는 용어가 마치 실제로 여성을 극도로 혐오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를 일으킬 소지가 있기는 하다. 영어 미소지니 misogyny를 번역한 ‘여성혐오’라는 용어는 여성에 대한 무시, 차별, 적대감, 폭력 등 여성에 반하는 뿌리 깊은 편견,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을 낙인찍거나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여기는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지난해의 강남역 살인사건이나 이번 왁싱숍 살인사건은 모두 여성혐오 범죄이다. 어쩌면 인천초등생 살인사건의 경우도 이 범주에 넣어야 할지 모른다. 나보다 약한 사람, 저항이 어려운 사람을 같은 인간이라기보다 하나의 대상으로 보고 범죄의 표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보도에 의하면, 이번 왁싱숍 살인사건 이후에 인터넷에 올라온 댓글에는 이러한 ‘여성혐오’적인 사고가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로 인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심각하다고 한다. 피해자의 외모에 대한 품평을 한다든지 피해자의 직업을 성적으로 해석한다든지 하는 댓글들이 많이 발견되고 심지어는 ‘강남에 여성 혼자 운영하는 왁싱숍이 또 있느냐’는 댓글도 발견된다고 한다. 한 여성이 소중한 목숨을 처참하게 빼앗긴 상황에서 여성을 자신과 동등한 인간이라고 본다면 차마 하기 어려운 말일 것이다.

이렇게 차별적인 시선 하에서 매번 약자들이 죽어가는 것을 언제까지 봐야하는지 암담하고 슬프다. 다시 여성혐오에 대한 논의를 제기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 또한 이런 마음으로 제기하는 것이리라. 이 논의를 통해서 외국에 나가서까지 성폭력을 저지르는 외교관에서부터 600만원의 빚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다는 왁싱숍 살인사건의 가해자까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인간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스스로 성찰하고 수정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해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강문순(전 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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