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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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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13  23: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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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60)

취기를 빌어 양지도 얼른 농담으로 받았다.

“아유 안 되지 그럼 우리가 어떻게 만났겠어.”

그들은 이미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높은 벽 앞에서 되돌리지 못할 운명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그 이야기의 구체적인 맥은 회피했다.

상대의 심정을 잘 알아주는 가장 친숙한 친구끼리 중언부언 저마다의 사연을 들추어내면서 밤샐 듯이 술을 마시다가 어느 결에 쓰러져 잠들었던 것이다. 눈을 떠서 이렇게 참혹한 상황을 맞닥뜨릴 것이라 짐작이나 했던가.

망연자실한 상태인 심신을 지탱하며 아파트 아래로 내려가니 둘러서서 들여다보고 있던 주민들이 피 흘리면서 널브러져 있는 한 여자를 보여주기 위해 자리를 비켜주었다. 양지는 하얗게 뒤집혀진 세상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부러진 듯이 무릎을 꿇었다. 무슨 말이든 하고 싶은데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결국 이렇게 끝내고 말 인생인 걸 미리 알았다면 너는 어떻게 살았을까.

어젯밤 그녀와 나눈 많은 이야기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양지는 실신할 것 같은 정신을 겨우 가다듬어 걸치고 있던 상의를 벗었다. 아버지의 말처럼 혼자 벌어서 혼자 쓰고 혼자 먹고 살던 여자의 최후가 남들 눈에 구경거리로 전락하지 않도록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처치였다. 양지가 옷으로 얼굴을 가리는 순간 정아는 이 세상에서 없어졌다.

정아의 시신이 영안실에 안치되는 것을 본 양지는 일상으로 돌아 간 ‘우먼파워’시절의 동지들께 다시 연락을 했다. 하지만 지쳐서 잠들었는지 전화를 받지 않았고 통화가 된 사람은 겹쳐서 겪게 되는 비극으로 아픈 가슴을 더 아프게 할 수 없으니 그냥 집에서 고인의 명복을 빌겠다는 말만 전했다.

그게 정답인지도 모른다. 양지도 경찰서 조사를 마치자 정아의 빈소를 떠났다. 당연히 목장으로 돌아가 그 동안 비웠던 자리를 채우고 맡은 일을 돌봐야 될 것이다. 그러나 양지는 마음의 나무 한 그루를 품에 안고 집이 아닌 다른 지역의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내 정원에는 아니라고, 내 취향은 아니라고, 내가 거느린 산수에 동참시킬 수 없다는 이유를 대며 제외시켰던 나무였다. 침 뱉고 떠난 물 다시 먹는다. 누군가 이 말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변명을 댄다. 고려했을 뿐이지 굳이 침까지 뱉은 것은 아니라고.

내 마음이 왜 이렇게 설렐까. 차창에 어리는 풍경을 내다보며 양지는 자신에게 물어본다. 그리운 고향을 찾아가는 느낌? 양지는 솔직히 이런 푸근하고 따뜻한 그리움을 안고 고향을 찾아 본 적이 없다. 참 어이없는 방문을 하고 있다. 오래 떠돌이 생활을 하던 나그네가 비로소 깃들 곳이 어디인가를 깨닫게 된 심정인지도 모른다. 고속버스의 좌석에 앉았으나 마음은 벌써 그 곳으로 훨훨 날아가고 있다.

현태를 말로 만 들었던 그의 고향으로 찾아가는 길이다. 뭐라고 답할지 꼭 집어서 찾아 온 이유도 생각해 놓지 못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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