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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34)<194>박경리 동상, 그리고 북유럽 이야기(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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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24  17:3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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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일행은 오슬로에서 카를 요한스거리의 중심부를 건너 오슬로 국립미술관으로 갔다. 이 미술관은 유럽의 유명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노르웨이 최대의 전시관이었다. 피카소, 르누아르, 세잔, 마네, 모딜리아나, 드가, 뭉크 등 그야말로 거장들의 전시관이었다. 이곳의 인기 전시관은 말할 것도 없이 노르웨이 출신 작가 뭉크의 전시관이다. ‘사춘기’, ‘절규’ 등 58편이 전시되어 있다.

뭉크는 1863년 12월 12일 노르웨이의 한 시골에서 크리스티안 뭉크라는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 해는 우리나라 거제땅에서 순교복자의 딸 유섬이가 71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는 때였다. 뭉크는 병약한 아이로 태어났고 여섯 살 때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죽었고 누이 또한 열다섯살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버지는 신경질적이며 광신도 같은 체질이었고 그의 여동생 또한 정신병을 앓았다. 그래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관한 의식에 젖어 있었고 죽음을 통해 삶을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했다.

1880년대 이후 뭉크는 프랑스를 여행하며 인상파의 흐름에 매료가 되었고 그의 그림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갔는데 kcl 지옥의 유황불에서 막 건져올린 듯 비명소리가 진동하는 것이었다. 나치가 독일을 점령하던 1933년 뭉크 그림이 퇴폐예술로 낙인이 찍혔다.이후 1944년 고독한 말년을 마감하고 자택에서 죽었다. 뭉크의 대표작인 ‘절규’는 석양 무렵 실제로 들었다고 느낀 자연의 절규를 그렸다. 기묘한 이 체험을 강렬한 표현으로 탄생시켰는데 흐르는 신음소리와 대담한 직선의 대비가 그 절규의 형식으로 드러난 것이다.

‘사춘기’는 냉철한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로 성에 눈을 뜬 소녀의 내면이 그려진 것이다. ‘다리 위의 소녀들’이나 ‘마라의 죽음’, ‘생명의 춤’ 같은 것에서 보면 북화 같은 원색 계통의 뭉턱 뭉턱한 색상이 돋보였다. 부분적으로 보면 진주 출신의 박생광의 어떤 화필이 연상되기도 했다.

필자는 뭉크 전시관을 다 보고 휴식시간에 일행과 떨어져 나왔다. 극작가 입센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입센이 창작한 ‘페르귄트’만을 놓고 노르웨이를 3대 문화 거점으로 들러보는 코스를 필자 나름으로 정하고 이제 그 세 번째 거점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여행이 문학기행이 아니고 성지순례도 아니라서 입센을 중심으로 놓는다는 것이 어정쩡하기가 이를 데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그 세 지점에 온통 정신이 쏠려 있어온 것이다. 첫번째가 노르웨이 들어서서 페르귄트의 전설의 현장을 지나는 일이었고, 두 번째는 두 번째 도시 베르겐을 들리는 것이었다. 그곳은 페르귄트 작품에 부수음악을 작곡한 그리그의 고향을 찾는 일이었고 세 번째는 ‘페르귄트’를 창작한 입센의 고장 오슬로를 찾는 것이다.

오슬로에서는 이미 오슬로 국립극장을 찾아서 거기 세워져 있는 입센의 동상을 확인했다. 지금 휴식시간을 이용하여 찾아가고자 하는 데는 입센의 생존시 단골 카페이다. 그 카페는 ‘그랜드 카페’라는 이름을 달고 있고 노벨 평화상 수상자 숙소인 그랜드호텔 1층에 자리잡고 있는 유명한 커피숍인 것이다. 필자는 거기서 ‘카페라떼’ 한 잔을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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