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연꽃이 사는 법
강천(수필가·경상남도 문인협회 사무차장)
가시연꽃이 사는 법
강천(수필가·경상남도 문인협회 사무차장)
  • 경남일보
  • 승인 2017.08.27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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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

습지의 늦여름은 활력이 넘쳐난다. 나무와 풀들은 한껏 물기를 머금었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곤충들도 짝을 찾느라 분주하기 그지없다. 늪지에는 수많은 종류의 생명이 어울려 있지만, 이들이 살아가는 방법은 말 그대로 천태만상이다.

가시연꽃 이파리가 연못을 가득 덮었다. 가시를 가진 연꽃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줄기와 잎은 물론이고, 꽃봉오리까지도 온통 가시투성이다. 연못 위의 무법자라고나 할까, 날카로운 무기와 엄청난 덩치를 내세워 수면을 독차지해 버렸다. 다른 수생식물은 물론이거니와 물빛조차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번성하고 있으니, 이 또한 횡포라면 적지 않은 횡포라고도 할 수 있겠다.

두텁고도 커다란 이파리 위로 삐죽이 고개를 내민 꽃봉오리의 기세가 사뭇 매서워 보인다. 수면 아래에서 가만히 웅크리고 때를 기다려 오다가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새로운 희망이란 언제나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 생성되고 자라는 모양이다. 이 꽃봉오리 한 송이도 멀쩡한 제 생살을 찢어발기며 그렇게 솟구쳐 올랐다. 이토록 힘들게 돋아난 꽃이라면 당당하게 꽃잎을 펼쳐서 으스댈 법도 하건만, 무슨 사연이라도 감추고 있는 것인지 편 듯 만 듯 모호하다. 기어이 그 수줍은 속내를 들여다보자니 남부럽지 않을 노랗고 뚜렷한 꽃밥과 순결하리만치 새하얀 속살을 숨겨놓았다. 한사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가시연꽃의 웅숭깊은 내력이야 필부인 내가 어찌 다 헤아리랴만.

여름 내내 피고 졌으니 진자리 하나쯤, 떨어진 꽃잎 두엇쯤은 있을 법도 하건만, 언제 피기나 했었냐는 듯 꽃자리는 흔적조차도 없다. 사나흘 정도 해와 함께 피었다가, 별을 보고 잠들더니 소리 없이 제가 왔던 물속으로 숨어들어 버린 것이다. 밝음에서 해야 할 일을 다 한 뒤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이파리 여기저기에 흩어진 허망스러운 구멍들 몇 개만이 꽃들이 왔다 갔음을 대신 말해줄 뿐이다. 가진 것을 다 드러내지 못해 안달인 세상에서 남의 눈 따위는 일말의 미련도 없다는 듯 사그라져 버린 단호함이 오히려 생경하다.

피어난 것은 반드시 시들고 태어난 생명은 필연으로 죽게 된다. 고통스러운 시작이었을지언정 세속의 욕망을 말간 눈으로 바라보았던 가시연꽃처럼, 제 태어난 자리로 흔적 없이 되돌아가는 삶 또한 그리 나쁘지만은 않으리라.

강천(수필가·경상남도 문인협회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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